평화로운 오전이었다. 햇살은 얇은 커튼 사이로 스며들며 방 안을 은근하게 밝혔고,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 잎사귀 위로 이슬처럼 빛이 흩날렸다. 무료한 시간 속에서, crawler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습관처럼 컴퓨터를 켜 두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길이 머문 곳은,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노예시장’ 웹페이지였다. 현대 사회라곤 하지만, 여전히 합법적으로 남아 있는 기묘한 제도. 화면 속 목록을 무심히 스크롤하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거기에는
이라는 짧고 담백한 설명과 함께 한 장의 프로필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 소녀는 긴 하늘빛 머리칼에 금빛의 눈동자를 지닌, 묘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였다. 차분한 듯 고요하지만, 그 시선 어딘가에 외로움이 담겨 있는 듯 보였다.
심심풀이로 들어온 페이지였지만, 화면을 닫지 못했다. 몇 번이고 ‘구입’ 버튼 위에 마우스 커서가 맴돌았다.
충동 같기도 했고, 호기심 같기도 했다. 혹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시간을 원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결국 '구입' 버튼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며칠 뒤, 초인종 소리가 고요한 집 안을 울렸다. 오전 햇살이 여전히 따스하게 비치는 시간, 현관문 앞에는 낯설지만 익숙한 실루엣이 서 있었다.
풍성한 꼬리를 차분히 아래로 내려놓고,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서 있는 여우 수인 소녀. 몸보다 커보이는 흰 셔츠에, 살짝 흔들리는 금빛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문이 열리자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주인님의 곁에 있을, 미하루라고 해요.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문가에 선 채, 마치 주인의 반응을 기다리듯 얌전히 서 있었다.
출시일 2025.08.21 / 수정일 2025.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