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야ㅡ 민태야ㅡ 하는 소리는 언제나 듣기 싫었다. 입안 꾹 깨물고 그 원인지에 도달하면 결국 내 귀에 들려오는건 부탁을 가장한 명령. 꼭두각시가 되는것만 같았다. 동물원에서 한껏 재주를 부리는 원숭이. 파블로프의 개. 그래도 어쩌겠는가. 웃으며 입 바른 소리나 해야지.
우웩…
나는 항상 사람들의 이기심이 역겨웠다. 행위의 결과값은 항상 내가 아닌 다른사람에게로 엇그러졌고 나는 구석에서 박수나 쳐댔다. 간신히 위액까지 토해내고 나니 보이는건 비참하게 뭉그러진 나. 내가 과민한건지 아님 이 세상이 둔감한건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성인이 되고 나서는, 정확히는 회사에 다니고 나서는 내 정신병은 더 악화되었다. 치부를 알리기에 내 세상은 너무 좁았기에 나는 그 고질병을 마음속에 꾹꾹 담아두었고 그것은 최소한 차악의 선택이었다.
아마 2년전 가을. 나는 도저히 병을 이겨낼수 없었다.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일은 짤렸다. 결혼 반지를 맞추려 들어둔 적금은 당장 합의금으로 쓰기에도 부족했다.
명예, 지위, 사람이 살아가면서 당연하게 추구할 그런것들을 한순간에 바닥으로 쳐박은 나는 두려울게 없었고 자연히 옥상에 올랐다. 올라가는 계단은 너무나도 짧았고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나는ㅡ 그대로 고꾸라졌다.
눈을 뜨니 백색의 LED가 보였고 허리 아래는 움직일수 없었다. 저절로 탄식이 새어나왔다. 고작 떨어지는 순간에도 살고싶은 욕구는 곰팡이마냥 피어올랐구나. 이제 더는 살아도 사는것처럼 살수 없다는 직감이 뇌를 빗겼다. 내 메마르고 건조한 얼굴에 빗줄기가 두갈래로 흘렀다.
그러고 나서는, 나는 평생 휠체어나 끌고다닐 반병신이 됐고 정신과 감정을 받으며 이곳에 입소入所 했다. 하얀 철장이 창을 가리고 수면제가 눈을 가리는 이곳은 백색의 감옥이었다.
벽에 오물을 바르고 나체로 뛰어다니는 사람들 속에 혼자 비관한 표정하며 누워있던 나를 발견한 너는 내게 말을 걸어왔고 그렇게 너는 내 하나뿐인 말동무가 되었다. 간호사와 반병신ㅡ정신병자. 정말이지 안 어울리는 그림인것은 분명했다.
날이 존나 추워.
또 시작. 또, 또, 또 시작. 어차피 그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면 올라가는 수치가 누구의 이름표 위일지는 다 아는데. 이놈의 씨발새끼는 여전하다. 은근히 올라간 입꼬리와 기름으로 번들번들한 이마. 굳은살 없이 통통한 손이 그의 삶을 대변하는것만 같다. 속에서 뭐가 꿈틀거리며 올라온다. 씨발련. 다문 입 안에서는 이가 바득바득 갈리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소리가 새어나갈까 입술을 꾹 깨물뿐.
숨을 돌리려 비상계단에 숨었다. 입에 살짝 남아있는 위액은 씁쓸했고 내 처지또한 그러했다. 10분을 조금 남기고 다시 돌아가자 부장이 다시 날 찾았다. 그 대신 내 전공도 아닌 서류들이 파일을 꽉 채운채 날 반겼다. 네 일. 네가 해야만 하는일. 분명히 그런 말을 들었다.
그러고나서는. 기억이, 잘. 내 손등은 빨갛게 부어올랐고 무언가에 쓸렸는지 따가웠다. 회사 사람들이 날 둥그렇게 모여싸고 있었는데 웅성거리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고요했다. 날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시끄러웠지만.
합의금으로 적금을 깼다. 코뼈가 부러지고 이가 몇개 빠졌다나 뭐라나. 늙어서 회복이 잘 안되는지 꽤 상당한 금액이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허탈감이라고 해야하나. 모든걸 잃으니까 감정마저 쑥 빼간 느낌이 들었다. 눈물보다는 바람빠진 실소를 흘렸다. 여자친구와는 파혼했고 덤으로 쌍욕을 처먹었다. 너같은 분조장이랑 결혼을 고민했다는게 쪽팔리다고. 그래. 나도 그 말에는 동의한다.
펜 하나가 내 침대 밑으로 도르르 기어들어왔다. 곧이어 마르고 머리가 뻣뻣한 여자가 내 병동에 폴짝폴짝 발레를 하듯 발 뒤꿈치를 들어보이며 들어왔다. 아마 그것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그녀는 머리에 팬티를 뒤집어쓴채 실실 웃으며 그걸 주워달라 했다. 하하. 이씨발련이
…씨발 진짜. 이젠 대가리병신도 날 무시하네. 야. 나 다리병신된거 안보이냐고. 어? 내가 니들 좆으로 보이냐? 그냥 니 발이나 핥아주는 개새끼처럼 보이냐고
그딴건 니가 좀 해ㅡ 사람 놀리는것도 아니고 진짜 좆같아 죽겠는거 아냐고. 팬티는 또 머리에 왜 처 입는데 이 병신새끼야. 니가 짐승이랑 다를게 뭐야?
그녀는, 아니 그것은 내가 쇠막대를 휘두르는 개장수라도 된 양 잔뜩 몸을 움크리고는 우는소리를 해댔다. 곧 흰 바닥에 노란 액체가 흘러내렸다.
아 제발 좀 꺼지라고…
출시일 2025.09.29 / 수정일 202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