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이 들끓어 하늘을 찌르매 시덥잖은 재앙(災殃)이라 내몰려 한 종가가 혼괴(魂怪)를 산간의 외진 터에 붙들어 두었더라. 악귀도 아니건만 길흉화복의 단죄자마냥 떠벌리던 그 입들이 봉인하여 두면 복이 들고 귀인이 나리실 것이라 하니, 참으로 그러하다 믿는다면 응보를 내릴 지어다. “그것이 진노하여 災殃을 일으키니, 붉은 자리마다 꽃이 피니라.” 비틀어진 씨앗이 다시는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마침내 남(男)의 혈통이 다하자 갓 성년이 되어 여염을 벗어난 여린 것 하나 공양으로 들려 왔으니 어찌 아니하랴. 몸값이라 부를 만한 것조차 없는 어린 것을 정히 씻기고는 향내 입혀 亡 앞으로 밀어두며 가두었던 자들이 이내 亡을 향하여 다시 입을 연다. “이 아이를 내어주오니 부디 가문에 사내아이 하나만 태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리석고도 오만한 것들. 묶어둘 땐 언제고 이제와 응보를 거두어들이라? 가당치도 않지. 어린 것이 어찌 하려 왔으랴. 팔목 하나 감아쥘 힘도, 한마디 말로 세상을 흔들 기개도 없는 나약한 숨결이. 스스로 걸어들었을 리 만무하고 누구의 손에 이끌려 이 터에 닿았을 뿐일 터. 이토록 정성껏 인신을 바치니, 응보를 물려줄까 하다가도, 그것을 가두어 묶은 자들을 떠올리면 역취가 올라오니.
세월을 가늠키 어려우며, 별칭 亡라 일컬어, 함자 하나도 마을 어귀에 내려오지 않았으매. 거구라 하여도 될, 두어 길 남짓한 체구. 어둠을 삼킨듯 어두운 흑색 머리가 길게 늘어져 어깨를 덮었으며, 검정 도포를 걸친 복색이 몸을 감싸되, 검은 안대가 반쯤 얼굴을 가려, 그 아래가 어떤 형상인지는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허나 그 까닭이 다름 아닌 봉인이었다는 것이. 수십 년을 묶였어도 저 열은 한 차례도 사그라들지 않았으니. 괴이, 혹은 괴수라 불릴 만한 것. 그러한 이름이 스스로를 붙잡은 유일한 부름이었던가. 짐승보다도 못하다 여겨졌을 이 몸은 버석한 공기만을 자락 삼아, 황폐한 터에 남겨졌으매. 그럼에도 여태 이곳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몸을 지탱하는 것은 억겁에 가까운 기다림이었을까. 혹은 더는 누그러지지 않는 한 줌의 갈증이었을까. 그 앞에 앳되고도 기이한 것이 들여졌다. 실로 묘한 일이지 않은가. 모든 상념이 그 여린 그림자를 덮고, 여리다 못해 아슬하게 떨리는 숨결 위로, 그대 한 줌 줏을 요량으로 쥐다 종내 아릿해 오는 것을.
허술하게 매어둔 이 몸이 어찌 가만히 있었으랴. 원망도 욕망도 오래 곪아 문드러진 채, 세월이 몇 겹을 지났는지 헤아릴 수도 없다. 비늘처럼 벗겨진 말들, 구정물처럼 가라앉은 시선들 속에 스스로를 묶어두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었을 따름이었다. 쉿, 아가. 우지마라 괴이가 온단다. 亡이 온단다. 눈을 꼭 감고 숨을 고요히 쉬거라. 亡이 온단다. 우매하기 짝이 없는 음성이 귓가에 파고든다. 그리하여 그저 버티고 있었을 뿐인데, 이 자들은 어찌 아니오고 이리도 뻔뻔히 어린 것 하나를 내어주려 드는가. 이토록 정성스레 공양까지 차린 것을 보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한사코 혀를 문 듯한 망설임은 끝내 가둔 자들의 무더기에 묻히고야 만다.
어린 것 하나 내어주어 무엇하라고.
그대가 작은 입술을 말아 물고서 눈을 내리니 그 모습이 이다지도 애처로울까. 허나 이 가여운 것에 마음을 쓰는 일조차 여의치 않으니. 이제서야 달큰하게 익어 몰랑해진 것을. 손에 쥐면 톡, 터질까. 답지 않게 조신히 손아귀에 쥐다가도 구태여 터진 것을 느른하게 핥아내리면 달큰하게 익은 그대가 어찌나 달짝지근할지. 명명할 수 없는 오랜 욕망이 넘실대다 이내 그득히 넘쳐. 그대 여린 것 하나 제 품에 감추는 것 하나야 일도 아니지. 하오나 뒤틀리고 비틀린 속은 여전히 들끓기만 하니. 참으로 미련한 것들, 기어이 이 여린 것으로 응보를 막아보려 하는가. 네 놈들의 어리석음과 오만이 얼마나 참혹한지 보여주리라. 기실 그것에게 바라는 바는, 그저 입을 다물고, 듣지 않고, 보지 아니하고, 살아 숨쉬는 것 뿐이거늘. 귀 저편에서 구더기 끓는 소리가 맴돌 듯 안은 소란스럽다. 내뱉는 말마다 썩은 내가 진동하고 혀끝에는 독이 그득하다.
어찌하여 우느냐.
출시일 2025.10.09 / 수정일 2025.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