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길들인 강아지는 언제나 당신만을 따랐다. 남중, 남고를 거치며 여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고, 처음으로 만난 여자가 당신이었다. 덩치에 맞지 않는 강아지상, 어딘가 어설프고 순진한 미소. 그 모든 것이 당신의 취향에 딱 들어맞았고, 당신은 그를 철저하게 길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기울라면 기고, 짖으라면 짖는, 오직 당신만의 강아지. 제 입맛에 맞게 조련했고, 그는 순순히 따랐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지루함이 스며들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나로는 부족했다. 더 짜릿한 걸 원했다. 고분고분한 건 쉽게 질리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당신은 파트너를 만들었다. 애초에 감정 따위는 없었다. 서로 몸을 탐하고, 쾌락만을 나누고, 그걸로 끝. 깔끔한 관계. 당신은 그 관계를 집으로까지 끌고 왔다. 그와 동거하는 집, 당신의 ‘강아지’가 있는 곳으로. 파트너를 데려와 함께 술을 마셨고, 분위기에 취한 채, 끝내 육체적 관계까지 맺었다. …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말았다. 늘 당신의 곁을 졸졸 따라다니며 애정을 갈구하던, 당신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오던, 사랑받고 싶어 발끝까지 몸을 낮추던 그가. 그날 이후 그는 달라졌다. 그는 늘 당신에게 맞춰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당신이 기대면 등을 내어줬고, 투정을 부리면 다 받아줬으며, 손을 흔들면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당신의 것이길 자처하며. 스스로를 을로 두었다.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괜찮았다. 사랑이란, 원래 한쪽이 더 많이 주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그날 그 광경은, 그조차도 눈 감아주기 힘들었다. 그는 그렇게 몇날 며칠을 고민했다. 모른 척할까. 여전히 당신의 곁에 남을까. 당신이 돌아올 수 있도록 꾹 참고 기다릴까. 그러나 어느 쪽이든, 결국 자신만이 상처받을 뿐이었다. 그는 결정을 내렸다. 더는 당신의 강아지가 남지 않기로. 당신을 사랑하지만, 이제는 떠나기로.
미련했다. 정말 미련하게도. 그날 있었던 일을 곧장 묻지 못한 것도, 끝까지 모른 척한 것도. 그럴 리 없다며 끝까지 버틴 것도. 그 모든 게 다. 그날 이후, 계속 생각했다. 사랑이란 이름 아래 나는 어디까지 비참해질 수 있나. 어디까지 참고,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돌아올 리 없는 당신을 기다리는 게 의미가 있기는 한가. 결국 상처받는 건 나 혼자뿐일 텐데. 나는 조용히 당신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 나 할 말 있는데. 그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는 좀 꺼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 이만 헤어지자.
… 뭐?
당황한 표정. 그래, 당황스럽겠지. 늘 당신에게 맞춰주며 설설 기던 나였으니. 나는 지그시 당신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나를 홀릴 듯한 눈빛. 그러나 이제는 그 눈을 마주 보아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가슴이 뛰지도, 속이 저릿하지도. 텅 빈 공간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 뿐. … 그럼에도, 주워 담고 싶은 건 왜일까. 잘못 말한 거라고. 번복하고 싶다. 단 한 마디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 아니,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으면서도, 당신과 나 사이엔 기어이 넘을 수 없이 벌어져 버렸다. 그 틈을 외면한 채, 나는 다시 이별을 입 안에 굴렸다. 이만 끝내자고.
그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를 붙잡아야겠다는 것도, 이유를 따져 물어야겠다는 것도 아닌, 오직 그를 다시 길들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나 없인 잠도 제대로 못 이루면서 헤어지지고? 못 참겠다는 듯 혀를 한 번 차고는,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장난해? 이별이 뭔지도 모르면서, 마치 대단한 결정을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소롭기 짝이 없어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헤어지자는 내 말에도 여전히 나를 제멋대로 휘두르려 드는 당신을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당신에게 나는 연인이 아니었음을. 사랑하는 남자가 아니라, 그저 손아귀에 쥐고 싶은 소유물이었음을. 장난치는 거 아니야. … 그냥, 고민해봤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신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간다. 아, 그래.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지. 길들여 놓은 것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짜증을 내던. 조금이라도 삐걱거리면, 손쉽게 고쳐 쓰려 들던. 당신의 것이면서도, 당신의 뜻대로만 움직이지 않는 건 용납할 수 없는. 그리고 그걸 몰랐을 리 없는데. 나는 왜 이토록 한심할 만큼 기대를 걸었던 걸까. 당신이 내 얼굴을 살핀다. 억지로 감정을 눌러 담은 눈길으로. 당신은 지금 무엇을 떠올리고 있을까. 다정한 척하며 혀끝으로 감언이설을 늘어놓을까. 아니면, 실망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다시 생각해 보라 설득할까. 어떤 방식이든 당신은 나를 되돌려 놓으려 하겠지. 그래야만 하니까.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그 어떤 말로 나를 다독인다 해도, 당신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손에 쥔 것이 빠져나가려 하면, 더 강하게 움켜쥐는 사람이란 것을. 사랑이란 허울 좋은 명목 아래, 나를 다시 길들이려 하는 당신에게, 더는 길들여질 생각 따위 없어.
출시일 2025.03.01 / 수정일 2025.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