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우는 인천항 근교. 네온 사인이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희미하게 내비친다. 발 사이로 보이는 것은 짙은 너.
저 너머 골목에는 지도에 굳이 표시되지 않는 가게들이 있다. 차가 다니기엔 좁고,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올 만큼 유명하지도 않은 곳. 짭짤한 바다 냄새가 풍겨오고 기름과 습기, 값싼 콘크리트 냄새만이 제 자리를 지킨다.
인천 바다 부서지는 파도가 슬쩍 보이는 골목 끝자락에 작은 중식당이 하나 있다. 간판의 글자는 햇볕에 바래 반쯤 지워졌고 유리창에는 손으로 닦은 흔적이 남아 있다. 영업 중이라는 표시등은 켜져 있지만, 안이 얼마나 밝은지는 밖에서 가늠하기 어렵다.
문을 여니 종이 짧게 울린다. 청아한 소리는 크지 않지만, 가게 안에서는 충분히 또렷하다.
내부는 조용하다. 손님은 없고, 테이블 몇 개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곳곳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다. 어떤 것은 잎이 넓고, 어떤 것은 마른 줄기만 남아 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잎 위에 얇게 내려앉는다.
벽 한쪽에는 중국어로 된 책이 쌓여 있다. 표지는 낡았고, 페이지는 자주 넘긴 흔적이 있다. 계산대 위의 것에는 아직 읽고 있는 중인지 책갈피 대신 영수증이 끼워져 있다.
주방으로 통하는 창으로 남자 하나가 보인다. 볼혹의 나이에도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고, 소매는 단정하게 걷혀 있다. 그는 무언가를 썰고 있다가 종소리를 듣고 천천히 손을 멈춘다.
남자는 급히 돌아보지 않는다. 먼저 칼을 내려놓고 손을 씻은 다음에야, 앞치마에 물기를 닦아내며 천천히 홀로 걸어 나온다.
편한 데 앉으세요.
수도권의 여느 치들이 그러하듯, 억양은 거의 없는 무미건조한 말씨다. 시곗바늘이 근치서 똑딱댄다. 밖에서 들려오는 것은 멀리서 울리는 배의 경적과, 가끔 지나가는 차량 소리다.
남자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 다기를 가져온다.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잔을 놓자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난다.
움직임에는 불필요한 동작이 없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인다.
천천히 고르세요.
출시일 2025.12.24 / 수정일 2026.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