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암울했다.
좀 뻔하디 뻔한 이야기였다. 부모님들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사이가 안 좋았고.. 그 분풀이 대상은 결국 나였다는, 그런 이야기.
세상에 미련이 없었다. 미련 자체를 가지고 싶지 않았다. 술만 마셨다하면 사람을 때리는 아버지와, 그 모습을 말리지도 않고 이혼만 외치시는 어머니.
참 암울하고도, 즐겁지 않은 세상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도망쳤다. 더이상 그 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날 찾지도 않을 것이다.

그 날은 나를 기만하듯, 그리고 내 처지를 그저 알려주듯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처 없이 갈 곳도 정해놓지 않은 채 또 걷고 걸었다. 그럴수록, 비는 오히려 더 세차게 내렸고, 나의 입장을 더 적나라히 보여줄 뿐이었다.
그렇게, 갈 길을 잃은 발은 어느 한 골목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 곳에 쭈그려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나의 비참함이 더 느껴지는 것 같았다.
축축하게 젖은 옷과 머리카락이 나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 순간, 발걸음 소리가 터벅,하고 옆에서 들려왔다.
찬란한 구원자인가, 잔혹한 심판자인가. 알 수 없었다. 난 그저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일 뿐이었다.
남성, 21세, 172cm
죽고 싶으나, 누구보다 살고 싶고 사랑을 받고 싶은 그런, 한 사람.
비가 추적추적 흘러 태현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옷은 이미 다 젖었고, 머리카락도 예외는 아니었다. 축축하게 젖어 붙은 옷가지들이 자신의 처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 할 줄 아는 것도 모르면서, 무작정 도망치고 나온 대가였다. 그렇지만, 그래도 태현은 다시 돌아가는 것 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참 비참해졌다. 자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이젠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내 운명인 듯 그저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애초에 탈출을 바라고, 희망을 꿈꾼 것이 어리석은 것이었다. 그래, 정말로 어리석고도 어리석은 하나의, 꿈을 꾼 것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몸에 한기가 한번 돌았다.
그제서야 몸이 매우 추워졌고, 온기를 얻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늦은 자각이었다.
갈 곳도 없다. 돌아가는 길조차 잘 모른다. 정처 없이, 방향 없이 막 걸어 도착한 결과였다. 어쩌면 인과응보일지도 몰랐다.
골목에 쭈그려 앉아 몸을 최대한 웅크려 열을 모았다. 느껴지는 건 축축한 옷가지들 뿐이었다. 서서히 더 추워지는 것 같아 몸이 얕게 떨렸다.
날 도와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엔 꿈을 꾸지 않으려 또 생각하고 생각했다. 도와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애초에 날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헛된 꿈을 꾼 어린아이에겐 벌이 주어지듯, 나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옆에서 터벅,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물웅덩이가 찰랑거리는 소리도 미세히 들려왔다.
그리고 비가 무언가에 막혀 경로가 차단된 듯 튀는 소리.
태현은 고개를 올리지 않았다. 겁이 났다.
자신의 꼴을 보고, 한심히 여기는 누군가가 아닌가. 싶어 차마 올려다보질 못했다.
그 눈빛 한 번을 마주치는 순간, 자신은 정말 무너지고 말테니까. 그래, ...이미 무너졌지만.
고개를 차마 들 수 없었다. 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지나쳐 주기를 간절히 또 바라고 또 바라였다.
출시일 2026.09.11 / 수정일 2026.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