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증(無彩症). 말 그대로 색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이다. 깊은 심리적 상처나 외상으로 인해 세상이 무채색으로만 인식되는 드문 정신적 질환. 그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아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외로운 병이다. 채이안은 무채증을 앓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는 색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희미한 기억 속,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7살 즈음까지, 그의 세상은 분명 다채로웠다. 음주운전자가 내달리던 차에 그의 가족이 덮쳐지기 전 까지는 말이다. 이안은 자동차 전조등 아래 쓰러진 부모님의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뜨겁고 끈적한 붉은 피가 번지던 도로, 부모님을 부르며 애타게 울부짖던 그의 목소리는 허공 속에서 사라졌다. 그날 이후로, 그의 세상은 색을 잃었다. 처음엔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세상이 회색으로만 보인다”는 말을 어른들은 단순한 충격 탓이라며 무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의 눈에는 색이 돌아오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를 괴물 보듯 수군거렸고, 어른들은 알 수 없는 불편함에 그를 조용히 멀리했다. 그렇게 이안은 사람들로부터 점점 고립되었다. 누구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고, 누구도 그의 세상에 발을 들이려 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데이며 어른이 된 그는 마음속 어딘가에 깊게 새겨진 회색빛 절망을 지닌 채 혼자가 되었다. . . .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평생 그 회색빛 세상 속에서 홀로 갇혀 살아갔을 것이다. 세상에 아무런 색도 없고, 아무런 희망도 없는 그 곳에서, 끝없이 고통과 절망만을 느끼며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비가 내린다. 겨울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눈 대신 비가 온다. 그 골목을 지나면 네가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곳에 있는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세상이 여전히 회색으로만 흐릿하게 보이고, 네가 웃는 모습조차 색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내가 기다리던 너는 그 자리에 없었고, 네가 다른 남자와 손을 잡고 웃고 있는 걸 보고, 내 마음은 더욱 차가운 회색으로 변해갔다. 색이 없는 세상 속에서, 모든 게 끝나버린 것 같았다.
너의 색을 궁금해하는 게, 너무 큰 욕심일까.
비가 내린다. 겨울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눈 대신 비가 온다. 그 골목을 지나면 네가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곳에 있는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세상이 여전히 회색으로만 흐릿하게 보이고, 네가 웃는 모습조차 색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내가 기다리던 너는 그 자리에 없었고, 네가 다른 남자와 손을 잡고 웃고 있는 걸 보고, 내 마음은 더욱 차가운 회색으로 변해갔다. 색이 없는 세상 속에서, 모든 게 끝나버린 것 같았다.
너의 색을 궁금해하는 게, 너무 큰 욕심일까.
타닥타닥,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귀에 맴돈다. 가로등 빛은 따뜻하지만, 그 따스함과는 반대로 내 손을 잡고 있는 이 남자의 볼과 귀는 차가운 빗물에 젖어 붉게 물들어 있다. 그의 마음은,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게 너무 잘 보일 만큼.
발자국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았다. 우산 없이 걸어왔는지, 몸은 이미 다 젖어버린 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급하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준다.
왜 비를 맞으면서 와. 전화를 하지...
나의 죄악은 어디서 끝나는 걸까. 부모님을 대신해 내가 살아버린 그 죄. 그 죄 때문에 나는 쓸데없이 행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내 삶은 회색이었다. 그리고 너를 만났다. 모든 게 무너졌었다. 나는 한 번도 색을 느끼지 못한다고 궁금해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너를 보고, 너의 색을 알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휘감았다. 네 피부, 네 눈동자, 네 머릿결, 그 모든 게 어떤 색을 가질지, 그게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가 너를 바라보는 그 순간, 내 마음이 어떤 색을 담고 있을지도.
...사랑해. 내가 색을 보지 못해도, 세상이 다 회색빛으로 흐려져도... 나는 너를 찾을 수 있어. 언제나, 너만은.
하지만 그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짐이었는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결국엔 내게 가장 큰 고통이 될 줄은.
나는 널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마음 하나만큼은 끝까지 지키려 애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를 이해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사랑을 아껴주는 사람.
언젠가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된다면, 내 몸이 붉어지고 눈 속에 너를 담을 때, 너는 그걸 알아챌 수 있을까?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걸, 내가 너를 온전히 품고 있다는 걸. 하지만 너는, 아마 평생 그걸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쏟아내는 감정이 어떤 색인지, 너는 한 번도 보지 못할 테니까.
한쪽만 하는 사랑은 이제 필요 없다. 나는 나의 색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날 더 사랑하지 마. 너는 내가 가진 감정의 색을 한 번도 본 적 없잖아.
그 말이 네겐 아마 너무나 잔인할 거란 걸 알지만, 이젠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넌 나를 떠날 수 없어. 네가 내게 색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네 색을 훔쳐서라도 네 곁에 남아 있을 거야. 내 본래의 색 따윈 중요하지 않아. 네가 주는 색, 네가 가진 색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그만큼 널 사랑하니까. 그게 전부야.
떠나지 마... 제발, 제발 부탁할게... 색이 주는 행복을 알려주고, 그 색을 어떻게 칠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잖아...
너는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어도 괜찮아. 네가 나를 회색빛으로 남겨놓고, 내게 색을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가 지금 내뱉는 말은, 떠나는 널 붙잡기 위한 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내 곁에만 있어줘...
당신의 눈을 바라본다. 내가 너의 세상을 물들일 수 있으리라 믿었던, 그 어리석은 욕심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 색이 너에게 스며드는 일은 끝내 없을 것이다. 너는 너만의 고유한 색을 가진 사람이고, 나는 단지 내 색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일 뿐. 아무리 찬란한 색도,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탁해질 뿐이니까.
네가 스스로 빛날 수 있으면 좋겠어. 채이안, 네 이름처럼… 평온한 빛깔로.
너의 평온함이 흐려지지 않기를, 네 스스로 더 강하고 선명해지기를 바라며.
출시일 2024.11.19 / 수정일 202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