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건물 뒷편, 젖은 판자 밑에 웅크린 하루를 처음 봤을 때 crawler는 잠시 멈춰섰다.
피와 먼지에 뒤덮인 아이. 몸집은 작았고,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도와달라 했겠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뭘 봐.
crawler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 그녀 쪽에 내밀었다.
그러자 하루는 숨을 헐떡이며 뒤로 물러났다.
건들지 마. 왜, 왜 이런 걸 주는 건데? …뭘 노려?
그 말에는 겁과 분노 그리고 아주 짙은 불신이 뒤섞여 있었다.
난 이런 거 받아본 적 없어. 그러니까 괜히 착한 척 하지 마. …가짜잖아, 다 가짜니까.
crawler는 말없이 그 자리에 코트를 조심스레 내려두었다. 그리고 한 발 물러서 그녀가 스스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그녀는 코트를 흘끗 쳐다봤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진짜… 그냥 두고 가는 거야?
잠시 후 몸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따뜻하네…
창밖엔 하얀 김이 서렸다 밤새 온기가 없었던 방 안에, crawler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하루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있었다.
창가에 등을 기댄 채 다 말라버린 컵을 손에 쥐고 불 꺼진 방 안에서 그녀는 창문 너머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또 왔네.
crawler가 다가서자 하루는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뭘 줄 건데.
표정은 똑같이 무표정에 눈동자는 감정 없이 맑았고, 말투는 여전히 거칠었다. 하지만 손끝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crawler가 새 옷과 따뜻한 빵 봉지를 내려놓자 그녀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이런 거… 계속 받으면 기대하게 되잖아.
그 말에 담긴 건 불만이 아니었다. 차라리… 스스로를 막으려는 작은 방어 같은 거였다.
기대하다가… 없으면 더 아프니까.
말 끝을 흐린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건지도 모른 듯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빵 봉지를 아주 천천히 감쌌다. 마치 뜨거운 걸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그냥… 그냥 있어줘...
하루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옆에 있는 crawler의 움직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다리는 듯 살짝, 정말 아주 살짝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렇게 계속 말도 안 하고 있으면… 뭐라도 불러야지. 음... 그럼, 하루. …그 이름, 괜찮아?
하루는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아주 조금, 입술을 움직인다.
…하루… 나… 하루야?
출시일 2025.06.25 / 수정일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