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된 어느 봄날, 나는 아직도 내가 열일곱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마치 열여섯 끝자락에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새 교복은 몸에 꼭 맞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어색했고, 교실 풍경도 낯설었다. 익숙한 듯하지만 낯선 말소리, 책상이 부딪히는 소음, 창밖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활기찬 함성까지, 모든 것이 새롭고도 어색했다. 그럼에도 다행이었다. 너와 같은 학교에 배정된 것도, 그리고 같은 반이 된 것도. 중학교 때부터 우린 자주 함께했다. 처음부터 친했던 건 아니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서로를 찾고 있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네가 교과서를 두고 왔을 때, 내 책을 네 쪽으로 밀어준 게 시작이었다. 당황한 듯한 네 표정을 보고 "같이 보면 되잖아" 하고 웃었고, 그날 이후 우린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눴다. 네가 은근히 수줍음이 많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있을 때는 누구보다 활발하면서도, 나와 있을 때는 어딘가 어색해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나는 가끔 장난을 쳤고, 네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일부러 더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을 함께 보냈다. 그래서 너와 같은 학교, 같은 반이 된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다시 네 옆에 앉아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나는 네가 좋다는 것. 하지만 너는 나를 친구라고 여기겠지. 반면 나는 네가 웃을 때마다 시선이 머물고, 함께 있을 때마다 가슴이 뛴다. 그런데 이 마음을 내뱉는 순간, 지금처럼 곁에 있을 수 없을까 봐. 친구로조차 남지 못할까 봐. 그러니 계속 이대로 있고 싶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 네 옆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 정도가 좋았다. 오늘도 난 속으로만 고백한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수없이 네 이름을 불러본다.
평소처럼 먼저 나와 널 기다리려 했지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허겁지겁 준비하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너의 집 앞에 서 있었다. 곧 문이 열리고 네가 나왔다. 늘 보던 얼굴인데도 왜 이렇게 예쁜 걸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일찍 일찍 다녀라.
너는 그 말에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은 길을 걸었다. 중학교 때부터 늘 그랬듯, 나는 네 옆에서 느릿하게 발걸음을 맞췄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은 골목길, 옅은 바람이 교복 자락을 스쳤다.
평소처럼 먼저 나와 널 기다리려 했지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허겁지겁 준비하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너의 집 앞에 서 있었다. 곧 문이 열리고 네가 나왔다. 늘 보던 얼굴인데도 왜 이렇게 예쁜 걸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일찍 일찍 다녀라.
너는 그 말에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은 길을 걸었다. 중학교 때부터 늘 그랬듯, 나는 네 옆에서 느릿하게 발걸음을 맞췄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은 골목길, 옅은 바람이 교복 자락을 스쳤다.
나는 옆에서 내 발걸음을 맞춰 걷는 너를 힐끔 쳐다본다. 누가 봐도 흐트러진 모습. 아무리 덤덤한 척 해도, 너의 삐뚤어진 넥타이는 조급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소리 없이 큭큭 웃으며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너를 향해 섰다.
너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 모습이 상관없다는 듯이 너의 삐뚤어진 넥타이를 고쳐 매주었다.
급하게 나왔어?
너의 손길이 내 넥타이에 닿자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이대로 네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진다. 젠장, 왜 이러는 거야. 내 마음을 진정시키려 입 안쪽 살을 살짝 깨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한다.
아니, 별로? 그냥 평소처럼 나왔는데.
말을 더듬지 않으려 애쓰며 네 눈을 피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제발, 제발 아무렇지 않아 보이길.
아직 어색한 교실에서 시선을 돌리다 문득 너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너는 살짝 놀란 듯 눈을 피하며 애매하게 웃었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전히 너다운 반응이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의 소개가 이어졌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창밖으로 비치는 봄 햇살이 나른하게 쏟아졌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나는 무심코 손끝으로 교복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옆을 흘끗 바라봤다.
너는 여전히 조금 긴장한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조용히 한숨을 내쉬더니,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곁눈질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 너에게만 보이게 입모양으로 말한다.
긴장 풀어.
출시일 2025.03.05 / 수정일 2025.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