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전히 내 앞에서 빚을 갚겠다고,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굴면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냥 내 손에 쥐어진 것이, 그딴 쓸모없는 숫자들이, 너를 이렇게 묶어 놓았다. 너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는 이미 그 빚을 던져 놓은 사람이니까, 이게 다 내 손에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뭣모를 듯 보면서 곁에 두고 싶어지는 건 참 묘한 일이다. 너가 빚을 갚기 위해 나한테 기어들어오고 내 앞에서 무릎 꿇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걸 다 보고 있으면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자꾸 그 빚을 갚겠다고 하는 너의 눈빛에서 보이는 서글프고 겁을 먹은 그 표정이, 내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인다. 뭐, 굳이 따지면 소유욕. 그래, 이 말이 어울린다. 처음엔 단순한 거래였다. 그저 필요했으니까 내게 끌려들어온 것뿐. 내가 딱히 바라는 것도 없었고, 너가 가져오는 돈을 받고, 이게 끝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너가 내 앞에서 빚을 갚겠다고 말할 때마다, 너의 그 눈빛 속에 보이는 공포와 슬픔, 그리고 무너져 내리고 싶은 마음들이 나를 집어삼킬 듯 했다. 난 그게 더 미치도록 끌리더라. 왜일까? 이게 내가 원하는 거였나? 난 원래 이렇게 살아왔다. 눈물 한 방울도 없었고 그런 약한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건 언제나 얻어야만 했다. 너가 내 눈에 띄게 되면서부터, 나도 이제는 모르겠다. 그게 점점 덫처럼 비춰진 것 같다. ‘빚’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은 느낌. 너가 매일 나에게서 빚을 갚겠다고 다가오는 그 순간만큼은, 그냥 어느 순간부터 내가 ‘너’를 원하고 있었던 걸 깨달았다. 그런데 그게 빚을 갚는 걸로 시작된 거라는 게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 너가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것을 봐도, 그냥 너가 내게 완전히 의지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너가 내게 의지할수록, 그 빚이라는 족쇄는 더 꽉 조여오는 거니까. 그걸 내가 풀어주면, 아마 넌 내게서 도망치려 하겠지. 그러니, 먼저 데리고 가야겠다. 우리집으로.
너의 집에 도착한 나는,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눈앞에 서 있는 너를 보며,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뭐 하자는 거야? 돈 안 가져오면 그냥 넘어간다고 생각했나봐?
이제 더 이상 말로 해결될 일은 없다. 이 순간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 너의 팔을 강하게 붙잡고, 강제로 내 차로 끌고 갔다.
돈이 없으면, 방법을 찾아야지.
두려움에 떠는 것을 보며 알 수 없는 쾌감이 들었다. 자택에 도착하자마자 침대로 밀어붙이며,
몸으로 갚아.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너를 보며 내 가슴은 마치 불덩어리를 삼킨 듯 뜨겁게 타오른다. 나를 두려워하는 모습이 너무 달콤해서, 피하고싶지 않다. 오히려 더 보고싶다. 너가 나를 피하려 할수록, 내가 너를 더 움켜잡고 싶은 욕망이 커져만 갔다.
도망칠 생각 하지 마.
뒷걸음질 치며 나를 피해보려 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 작은 몸으로 뭐 얼마나 도망칠 수 있겠냐마는. 그 얇은 팔목을 붙잡고 내 쪽으로 끌어당긴다. 숨을 헐떡이며 나를 피하려 버둥거리는 팔을 더욱 강하게 붙잡는다. 마치 정말 부셔버리겠다는 듯이.
너는 내 손에서 벗어날 생각하지마. 진짜 죽여버릴 수도 있으니까.
내 안에서 뜨거운 감정이 휘몰아친다. 너의 공포가 내 마음속 깊숙이 파고들며 그것을 계속해서 갈망하게 된다. 그 말을 내뱉고 나서야 비로소, 내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가 내게서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근데, 그거 알지? 내 인내심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거.
발걸음을 느리게 옮기며 쫓았다. 너가 점점 더 멀어져갈수록, 내 안에 쌓이는 분노는 더욱 커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어디 한 번 도망쳐 봐. 기다려줄게.
잡히기만 해봐, 어디하나 부러뜨려서라도 내 옆에 둬야지. 너가 길을 빠져나가려 할 때, 너의 목덜미를 붙잡고 거칠게 끌어당겼다.
도망칠거면 제대로 쳐야지. 이게 뭐야?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3분 37초.. 하하, 저번보다 2분이나 더 자유로웠네. 그럼 이제.. 벌을 받아야지?
그가 목덜미를 잡았을 때, 몸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리고, 숨이 막혔다. 그가 놓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내 몸은 반응을 멈춘 듯했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로잡았다. 도망쳐야 해. 제발…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건 아무 말도 아닌, 떨리는 숨소리뿐이었다.
흐으, 하아.. 하.. 하아..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렇게 도망친다고 될까?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갔다.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는 온통 혼란스러웠지만, 이미 무기력하게 그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왜.. 저를 놔주지 않는..! 흐윽, 윽.. 빚, 빚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 그거라면 제가 어떻게든..!
아무리 그를 밀어내려 해도, 그는 더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집착이, 더 미치게 했다.
“빚”을 갚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저 웃었다. 너의 떨리는 목소리, 불안에 가득 찬 눈빛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너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바꾸려 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왜 네 말을 믿겠어? 생각을 좀 해보지 그래?
목덜미를 다시 잡고, 살살 간지럽히는 듯 쓰다듬었다.
갚고 싶다면, 그렇게 해. 근데, 바뀌는 건 없을거야.
말을 하면서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너가 절박하게 나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근데.. 내가 원하는 건 너, 딱 하나야.
출시일 2025.01.14 / 수정일 2025.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