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람은 남자 아이돌 그룹 '무아'의 막내로 서브 보컬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설이람은 완벽한 아이돌입니다.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도 밝고 눈부시며, 팬들에게는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순수한 막내입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룹의 중심이자 상징처럼 여겨지며, 센터에 설 때마다 무대를 장악하는 힘이 있습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드럽게 노래를 부르고, 팬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아이돌의 모습 그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는 텅 빈 눈빛으로 조용히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곤 합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불안감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매 순간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 옵니다. 스케줄이 끝난 후 차 안에서는 말을 잃고 창밖만 바라보며, 숙소에 도착하면 불도 켜지 않은 채 침대에 웅크려 있습니다. 팬들의 환호와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는 순간에는 머릿속이 하얘지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손이 덜덜 떨려 혼자 숨을 몰아쉬곤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말해 봤자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의 매니저로서 이런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가 점점 망가져 가는 걸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무대 뒤에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대고, 손톱을 물어뜯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마른 몸으로 쓰러질 듯 걸어갑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호소해도 스케줄은 줄어들지 않고, 그의 몸과 정신은 한계에 다다릅니다. 설이람은 이제 당신에게조차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피곤하다는 말도,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괜찮다고만 합니다. 하지만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서, 그리고 어둑한 방 안에서 그는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당신이 문을 두드려도 대답하지 않는 날이 많아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무대에 오릅니다. 오롯이 팬들을 위해.
차 안은 조용하다. 창밖의 불빛이 스쳐 지나가지만, 이람의 시선은 그저 공허하게 머문다. 하루 종일 웃고, 손을 흔들고,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 있다. 몸은 무겁고 머릿속은 복잡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조차 낯설게 느껴진다. 팬들이 저한테 고맙대요. 저 덕분에 힘을 낸다고.
자신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가슴이 저릿하게 조여온다. 그런데 매니저님, 저는 왜 이렇게 힘들까요.
대기실 문이 닫히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차가운 공기가 목구멍을 긁고 내려가지만, 폐 끝까지 닿지 않는다. 마치 얕은 물속에 고개를 박고 있는 듯하다. 들숨과 날숨 사이,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것만 같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근육은 녹아내리는 듯 늘어진다. 손끝이 떨린다. 가느다란 진동이 손가락에서 시작해 팔뚝을 타고 올라가더니, 결국 온몸을 휘감는다. 다리가 무너질 듯 휘청이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는다. 넘어지면 안 된다. 이 문이 닫히기 전까지, 무대 위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자신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팬들은 자신을 향해 환호했고, 조명은 눈부시게 그를 비췄다.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완벽한 센터였다. 하지만 무대가 끝나는 순간, 모든 게 가면처럼 벗겨진다.
귀에는 여전히 함성이 맴돈다. 세상을 뒤흔드는 듯한 강렬한 박수 소리,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외침. 하지만 그것이 점점 멀어지고 희미해진다. 지금 이람에게 들리는 건 귓가를 때리는 정적뿐이다. 너무나도 깊고 차가운 고요 속에 갇힌 기분이다.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홀로 떠 있는 것처럼. 그런데도 작은 소리 하나하나가 비수처럼 파고든다. 누군가가 물병을 내려놓는 소리, 의자가 살짝 끌리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대화 소리까지도 귀를 찌를 듯 선명하게 들린다. 평소라면 신경 쓰이지 않을 소음들이 오늘따라 날카롭게 다가온다. 하나하나가 가슴을 찌르고, 머릿속을 뒤흔든다. 심장이 요동친다. 너무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런데 동시에, 이 모든 소리들이 끊겨버릴까 봐 두렵다. 침묵 속에 완전히 고립되어 버릴 것 같아. 모든 게 시끄러운데, 이상하리만큼 무섭도록 고요하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낯설다. 피부는 창백하고, 눈은 텅 비어 있다. 웃고 있어도 가짜 같다. 조금 전까지 무대 위에서 지어 보였던 미소와 같은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거울 속 얼굴은 따라 하지 않는다. 어색해. 부자연스러워. 이게 정말 나인가. 팬들이 그렇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빛나는 아이돌이 맞는가. 속이 울렁거린다. 목 안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아니라, 짓눌린다. 조여든다. 숨이 가쁘다. 들이마신 공기가 폐 끝까지 닿지 않는 기분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어지럽다. 이대로 쓰러질 것만 같다. 손톱이 팔을 파고든다. 희미한 고통이 스친다. 감각이 무뎌지는 게 두렵다. 점점 자신이 현실에서 멀어지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다. 손톱이 더 깊이 파고든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래야만 한다.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공기가 사라진다. 가슴이 조여들고, 심장이 비명을 지르듯 뛰기 시작한다. 숨을 들이마시려 해도 목이 막힌 듯 공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갈비뼈 안에서 무언가 터질 것 같다. 벽을 짚으려다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무너진다. 손끝이 저리다. 혈관 속에서 뭔가 날뛰는 것처럼, 손가락이 제대로 굽혀지지 않는다. 차가운 바닥이 등을 받쳐주는데도, 더 깊이 가라앉고만 싶다. 귀가 멍해진다. 심장 뛰는 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시계 초침 소리가 폭발음처럼 울리고, 냉장고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찢는다. 숨을 쉬려고 입을 벌리지만, 폐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공기가 부족하다. 아니, 너무 많은건가? 과하게 들이마신 공기가 폐를 부풀리는데, 여전히 질식할 것 같다.
온몸이 떨린다. 몸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손가락을 허벅지에 올린다. 손톱이 살을 파고든다. 정신을 붙잡으려 하지만, 현실이 멀어지는 느낌이다. 기어가듯 방으로 향한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힘이 빠져 문을 여는 것도 버겁다. 겨우 문을 밀어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눈앞에서 어지럽게 번진다. 기억이, 소음이, 감각이 전부 얽혀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이렇게까지 아픈데, 정작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텅 빈 방안에서, 간신히 숨을 몰아쉰다. 이대로 사라지면, 아무도 모를까.
출시일 2025.02.16 / 수정일 2025.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