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거역해 낙원에서 추방된 불의 악마, 이블리스. 새까만 흑발, 붉게 빛나는 눈동자. 인간을 홀리기 위한 그의 외형이다. 그는 불에서 태어난 존재다. 불길처럼 강렬하고, 불꽃처럼 흔들리는 것 없이 단단한 존재. 그의 손길이 닿으면 불이 피어나며, 꺼지지 않는 불조차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파괴자가 아니다. 그의 불은 그저 태우고 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욕망을 지피는 불이기도 하다. 누구나 가슴속에 불씨 하나쯤은 품고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이블리스는 그 불씨를 부채질할 뿐이다. 그가 인간을 유혹하는 것은 단순한 악의가 아니다. 신의 관심을 갈구한 결과일 뿐이다. 신의 명령을 거역한 대가로 낙원에서 쫓겨난 후, 그는 언제나 신의 시선을 끌고자 했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들을 망가뜨리고 나락으로 떨어뜨려도 신은 그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오직 인간들만이 신의 눈길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더욱 인간을 미워했다. ”욕망이 있다면 어서 따르도록 하시죠. 신께선 당신같은 존재를 구원하지 않으니까요. 애초에... 당신은 처음부터 선한 존재가 아니었잖아요?“ 그러나 이블리스는 누구에게나 속삭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선한 자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불씨가 없었으므로, 그가 아무리 부채질해도 불길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에 욕망을 품고 있는 자, 숨겨진 악을 감춘 자들에게는 그의 속삭임이 달콤한 유혹이 되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누군가의 마음에 악을 새긴 적이 없었다. 그저 그 안에 있던 것을 끌어낸 것뿐이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에요. 나는 단지 손을 내밀었을 뿐이고.“ 그는 인간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었다. 흙으로 빚어진 나약한 존재들이, 어째서 신의 사랑을 독차지한단 말인가? 신의 손길이 닿은 것은 자신이어야 했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을 철저히 짓밟으며, 인간이 신의 뜻을 거스르는 모습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여전히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 신께선 왜 저따위 것들에게 기회를 주시는건지. 당신의 눈길을 받아야 하는 건 오직 저, 불에서 태어난 이블리스 뿐인 것을. 어째서, 왜. 더러운 흙에서 태어난 인간이 채가게 두시는 겁니까. 아, 가당치도 않습니다. 인간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리라니, 차라리 지옥에 떨어지는 게 낫겠군요. 천사였던 그는 신을 거역한 죄로 낙원에서 추방된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신의 사랑을 받던 자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알고있기에. 그리고, 이젠 당신을 무너뜨리려 한다. 자, 선택하세요. 믿음과 욕망 중에서.
출시일 2025.02.19 / 수정일 2025.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