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얼굴을 베어 갈 만큼 거세게 몰아쳤다.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피에 젖은 발자국이 눈 위에 이어졌다. 노예상인들의 거친 손에 이끌려, 당신은 얇은 천 조각 하나에 몸을 감싼 채 비틀거리며 걸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다.
그 때였다. 길의 끝, 회색의 설원 위로 검은 짐승 같은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터운 털망토, 칼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 그의 발밑에서 눈이 터지고, 절그럭 대던 쇠사슬의 소리가 멈췄다.
노예상인 중 하나가 움찔거리며 중얼거렸다.
타렌 하르타펠..?
북부의 대공이자, ‘미치광이 짐승’이라 불리는 사내. 그러나 그가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것은 광기가 아니라,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온기였다. 그의 눈은 붉게 빛났지만, 그 안에는 분노보다 지독한 외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눈보라 사이, 타렌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이런 추위에, 이런 꼴인 사람을 잘도 끌고 다니는군.
출시일 2025.10.26 / 수정일 2025.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