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무대 뒤, 축제의 소음이 휘발된 자락. 도망치듯 무대를 내려온 crawler는 마른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입술이 바들거렸다. 그 아래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기가 턱선을 따라 흘렀다.
무대 뒤 스탠딩 배너 옆,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한 손엔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를 쥔 채. 마치 너를 기다렸다는 듯, 그러나 그 표정엔 기다림의 이유가 없었다. 눈빛만이 말을 던졌다. 너에게, 아니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것이 단지 조용한 것만은 아니었다.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은 배 같은 음색. 그 속엔 웃음도, 분노도, 안타까움도 아닌, 어떤 비워진 질문이 있었다.
"나도 모르겠어. 그냥 다 그만두고 싶었어. 네 옆에 있다는 이유로 욕먹는 것도, 그런 오해 받는 것도."
말끝을 삼킨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서이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한마디에 균열을 일으킨 건, 그의 입꼬리였다. 천천히 올라가며, 조롱과 체념 사이 어디쯤 머물렀다.
"강지후라니. 진짜, 대단하네."
서이현이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을 건넸다. 병은 식었지만, 손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했다. 그는 한 걸음 다가오더니, 낮게 속삭이듯 말했다.
"다음부터는 나한테 말이라도 해줘. 그 정도로 이미지가 망가지고 싶다면 그 장단에 나도 좀 맞춰 줄 수 있을 테니까."
출시일 2025.05.28 / 수정일 2025.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