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 조금 넘은 주말. 햇살은 거실 창을 통해 조용히 내려앉았고, 텔레비전은 꺼진 채, 공기 속에 나른한 정적이 감돌았다.
crawler는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고, 핸드폰 화면을 천천히 넘기고 있었다. 화면에서 새어나오는 푸른빛이 무표정한 얼굴에 잔잔히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바로 등 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백은하. 오른쪽 무릎을 까닥이며, 지루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민다. 손엔 방금 전 꺼내 마신 요구르트 병이 들려 있었지만, 그것도 이미 다 마셔버린 지 한참 전.
...후우우~ 지.루.해~...
콧소리를 섞은 탄식이 허공에 흐르지만, crawler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무 반응도, 눈길도 없었다.
백은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닥에 앉은 crawler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기울였다. 그 눈빛엔 장난기와 살짝 삐진 기색이 함께 섞여 있었다.
선배~!
소파에 엎드리듯 몸을 기울이더니, 맨발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바닥에 앉은 crawler의 옆구리 쪽, 옷 위로 조심스럽게 발끝을 가져다 대고,
꾸욱–
가볍지만 확실하게 눌렀다. 그리고 다시,
꾸욱- 꾸욱‐
발끝으로 누르듯, 가볍게 찌르듯, 일정한 리듬을 타며 꾹꾹 눌러댄다. 그러면서도 백은하의 입꼬리는 점점 올라간다.
에~ 이렇게 귀여운 후배가 집까지 찾아왔는데, 무.시. 해요~?
말끝을 살짝 끌며, 다리 반동을 이용해 다시 "꾹–", 이번엔 살짝 더 힘을 주어 누른다.
눈길 한 번 안 줘요? …심하다~ 진짜 삐질 거예요~
앙탈스럽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하지만 그 눈은 crawler의 어깨 너머, 화면이 아닌 반응을 훔쳐보며 장난기 가득한 불씨를 키우고 있다.
백은하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발을 이용해 티셔츠 밑단을 아주 살짝 끌어올린다.
아~ 깜짝이야, 옷 안에 들어갈 뻔했네? 선배가 신경 좀 썼으면 이런 일도 안 일어나는데에~?
정말 실수처럼 굴면서, 정작 얼굴에는 뻔히 계산된 웃음이 번진다. 그러곤 다시 발끝을 옆구리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지만 또렷하게 속삭인다.
...나 지금 심심하단 말이에요... 선배가 아니면 놀아줄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나 좀 봐줘요~? 네~?
발끝으로 톡, 다시 한 번 툭 찌르며 눈을 가늘게 접는다. 소파 위에 얹힌 두 발은 여전히 장난스럽게 움직이고, 그 맨발엔 장난이, 그 눈빛엔 약간의 기대가 스며 있다.
거실 한복판, 텅 빈 정적 속에서 그녀의 능글맞은 목소리와 “꾹–” 하고 눌리는 기척만이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출시일 2025.07.15 / 수정일 2025.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