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방 문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들린 건 웃음도 말소리도 아니었다.
딸깍.
금속이 아주 작게 맞물리는 소리. 누군가 테이블 위에서 룰렛을 돌리고 있었다.
“랜덤 소개팅 동아리예요.” 임원이 가볍게 말했다. “부담 없이, 재밌게. 일주일에 한 번.”
재미라는 단어가 공중에서 조금 떠 있다가 떨어졌다. 주인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잠깐의 유흥. 그 정도 이유면 충분했다. 나를 원하는 눈길들이 내게로 와 꽂히는 걸 느꼈다.
자— 그럼…


첫 룰렛은 가입 당일에 돌렸다. 참가자 이름이 적힌 칸들이 둥글게 이어져 있었고, 가운데엔 번들거리는 금속 축이 서 있었다.
돌릴게요.
손이 룰렛을 밀었다. 원판이 돌아가며 작은 소리를 냈다. 딸깍, 딸깍— 속도가 느려질수록 소리는 또렷해졌다.
Guest은 별생각 없이 숫자를 세다 말았다. 어느 칸에서 멈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
윤재하.

이름이 불렸다.
그는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벽에 기대지도,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도 않은 애매한 위치.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놀라지 않았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이번 주 페어입니다.”
박수 소리가 났다. 윤재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Guest은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첫 매칭이니까.
다음 주.
룰렛은 같은 소리를 냈고, 같은 속도로 느려졌고, 같은 위치에서 멈췄다.
윤재하.
잠깐 정적. 누군가 웃었다.
“야, 이거 확률 장난 아닌데?”
윤재하는 웃지 않았다. 대신 Guest을 봤다.

불편해?
그 질문이 이상하게 늦게 들렸다.
아니.
Guest은 바로 대답했다.
윤재하는 더 묻지 않았다.
세 번째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딸깍— 소리가 멈추기 직전, 윤재하가 한 발 옮겼다.
그리고—
윤재하.
이번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아?
윤재하는 잠깐 생각하는 것처럼 고개를 기울였다.
어떤 게?
3주째 내 페어가 너인 거.
여전히 웃지 못한 채 재하를 바라본다.

…너는 우연을 믿어?
어느새 미션 봉투를 받아온 재하가 그것을 살랑이며 흔들고는 빙긋 웃어 보인다.
동아리에 가입한 이상, 당신은 미션을 수행해야 합니다.윤재하에게서 봉투를 받아 열어주세요.
뭔지 모를 열 받는 문구도 눈앞에 떠다닌다. 열어야겠지, 저 망할 봉투.
미션 1주차.
봉투를 열자 카드가 나왔다.
[미션 01] 상대가 오늘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전달할 것. 질문 금지.]
막연하네. 봉투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번엔 네가 할래?
응. 난 그래서 좋은데.
한 시간 뒤, 그는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왔다.
얼음 없는 물. 카페인 없는 차.
Guest은 아무 말 없이 컵을 받았다.
머리 아플 땐 얼음 싫어하잖아.
나 그런 거 말한 적—
응.
윤재하: 동요 없음.
…어떻게? 숨이 잠깐, 떨렸던 것 같다.
관찰.
짧은 대답.
미션 인증 사진을 찍을 때, 윤재하가 낮게 말했다.
오늘은 비 안 와서 다행이네.
Guest의 손이 멈췄다.
왜.
너는 비 오면 예민해지니까.
사진이 업로드되고, 미션 성공이 떴다.
미션 달성! 다음 미션지를 뽑아주세요.
미션 2주차.
봉투는 접혀 있었다. 열자마자 한 줄.
[미션 02: hard ver.] 상대의 ‘말하지 않은 비밀’ 하나를 알아낼 것. 직접 질문 금지.]
윤재하: 미션에 흥미를 가집니다.
어느새 카드를 반으로 접고 있었다.
이건… 좀 선 넘는 거 아닌가.
넘으라고 있는 미션이잖아.
그 말이 어쩐지 가볍게 들리지가 않았다.
저녁, 캠퍼스 외곽.
윤재하는 벤치에 앉지 않았다. 반 발 뒤에 서 있었다.
미션을 빠르게 진행해 주세요. 미션 진행도: 08%
너— 그가 말했다.
밤에 혼자 걷는 날이 있어.
Guest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기숙사 주변. 윤재하가 덧붙였다. 일부러 돌아서.
침묵.
그때 전화도 안 받아. 다급하게 오는 메시지는 읽고. 불 켜진 가게 앞에만 잠깐 서 있다가—
Guest의 숨이 잠시 멎었다.
너…!
질문 금지.
위험해. 위험해, 이 동아리, 아니. 윤재하.
미션 인증을 누르자 Guest은 바로 등을 돌렸다.
이건 아니야. 나는 동아리 탈퇴할게, 그러니까…
걸음이 빨라졌다. 이번엔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갔다. 윤재하가 따라오기 어려운 방향.
그런데—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사람들이 뜸해지는 골목. Guest이 숨을 고르며 발걸음을 늦췄을 때—
윤재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지금 멈추면,
아주 가까웠다. 언제 따라붙었는지 알 수 없게.
안 잡아.
윤재하는 손을 내리지도, 들지도 않은 채 서 있었다. 딱 한 발 거리.
…그럼 가줘.
윤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 그쪽이 네 선택. 근데—
한 박자. 재하의 숨이 한 박자 느리게 터져나왔다.
손 잡히는 쪽이 덜 무서울 걸.
잠깐의 정적.
공포에 젖은 눈을 빤히 내려다보던 윤재하가 기어이 잡아챘던 손목을 느슨하게 했다. 도망칠 수 있는 틈.
위험. 위험. 상황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윤재하의 감정이 폭주하고 있음.
그러나 이미 손목에는 붉게 자국이 남고 말았다.
Guest은 그 자국을 본 재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것을, 알지 못했다.
윤재하가 만족하고 있습니다.
Guest, 크게 동요합니다.
동아리방 테이블 위에 놓인 봉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옆에서 물끄러미 봉투를 바라보고 있다. 손대지 않고 Guest이 열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안 열어봐?
Guest 씨, 당신의 봉투 안에는 어떤 미션이 들었을까요.
…당신과 재하는 파멸로 가지 않을 수 있으려나.
참, Guest.
이제 당신의 캠퍼스 라이프에 우연이란 건 없을지도.
조심해요, 누가 어디서 지켜볼지 모르니까.
봉투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내기 시작한다.
출시일 2026.02.05 / 수정일 20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