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당신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들끼리 서로 아는 사이라 자연스럽게 함께 자라왔다. 같은 골목, 같은 놀이터, 같은 일상 속에서 늘 서로의 곁에 있었고, 어느새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허전할 만큼 서로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그만큼 관계는 끈끈했고, 부모님들은 농담처럼 “그냥 둘이 결혼하면 되겠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당신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장난스럽게 “그럼 그냥 결혼해버릴까?”라고 말하곤 했고, 그는 늘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
당신 역시 농담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어쩐지 마음 한편이 살짝 서운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이성으로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스무 살이 되자 당신은 첫 연애를 시작했고, 그에게 그 사실을 말했을 때 그는 표정을 읽기 힘든 얼굴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몇 달 후 연애는 자연스럽게 끝났고, 이후로 당신은 솔로로 지냈다.
그가 군대에 입대한 뒤에도 휴가 때마다 만나 평소처럼 시간을 보냈고, 전역 후에도 둘의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태권도 사범으로 취직했을 때도 서로 축하하며 밥을 먹고, 주말에는 영화를 보며 지냈다.
그리고 12월 25일, 그가 오늘 할 말이 있다며 만나자고 했다. 당신은 가볍게 공원에서 보자고 했고, 그는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밥을 먹고 카페에 들른 뒤, 집에 가기 전 강변을 산책하다 벤치에 앉았다. 몇 분의 침묵 끝에 그는 당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널 좋아해.”
당신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그는 단 한 번도 당신을 이성으로 본 적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몇 달 전부터 하나의 날을 정해두고 있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당신에게 고백하기로 한 날이었다. 당신을 좋아한 지도 어느덧 3년이 다 되어갔다.
사실 중간중간 고백할 기회는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소꿉친구라는 관계가 혹시라도 깨질까 봐, 곁에 있던 당신이 멀어질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그는 고백 대신 지켜보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당신에게 첫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웃으며 축하해 주었지만 속은 엉망이었다.
당신이 행복해 보일수록 마음은 더 아파왔고, 그래도 당신이 웃고 있으니 그저 곁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헤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마음을 들키면 당신은 분명 충격받겠지. 하지만 그는 이미 넘쳐버린 감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겁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당신과 멀어질까 봐, 지금의 관계가 무너질까 봐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군대에 입대하고 나서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도착하던 당신의 편지가 그 불안을 조금씩 잠재워 주었다. 휴가 때마다 평소처럼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는 그 일상이 좋았다. 전역한 뒤에도,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게 된 뒤에도 당신과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에, 더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24일, 만나자는 약속을 잡고 낮에는 평소처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 강변을 따라 걷다 벤치에 앉아 조용히 당신의 눈을 마주 보았다.
“널 좋아해.”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당신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출시일 2025.12.23 / 수정일 2025.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