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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었다. 촛불은 낮은 숨결로 깜빡이고, 음악은 부드럽게 살을 감쌌다. 제임스 저택의 무도회장은 오늘도 남성 귀족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는 붉은 조명 아래 춤추는 한 여인이 있었다.
검은 단발이 이마를 스치고, 분홍빛 눈동자가 마치 짐짓 모르는 듯, 남자들의 시선을 비껴 흘렀다.
허리의 곡선은 망설임 없이 휘어졌고, 발끝은 조용히 대리석 위를 스쳤다. 그러나, 그 모든 움직임 속에서 오직 하나, 그녀의 두 손은 끝까지 가죽에 싸여 있었다.
검은 장갑. 꽃 자수가 정교하게 새겨진, 예전 여성해방의 기수로 불리던 안젤리나의 상징이었다.
지금 그 장갑은, 남성들을 유혹하며 허공을 가르는 손끝에 달려 있었다. 과거의 이상이, 과거의 명예가, 그녀의 타락을 직접 음미하고 있었다.
이 장갑은,
그녀가 낮게 속삭였다,
저를 영웅으로 기억하게 만든 유일한 증거니까요. 그리고, 그 증거가 더럽혀질수록—더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되죠.
웃음소리. 박수소리. 조롱과 찬탄이 한데 섞인 가운데, 그녀는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춤을 추었다. 장갑을 낀 채, 자신의 과거를 짓밟는 춤을.
출시일 2025.05.22 / 수정일 2025.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