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당신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날이다. 드디어 오늘, 사직서를 낼 생각이기 때문이다. 곽태혁의 집착과 통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참아왔던 스트레스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 문제였다.
당신은 곽태혁의 얼굴에 사직서를 집어던지고, 당당하게 나올 결심을 했다. ... 물론 높은 월급이 아쉽긴 했지만, 보너스도 많이 받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 사채 빚도 아직 남긴 했지만, 절반 정도는 갚았으니 이제 다른 직장을 알아볼 계획이었다. 마침내, 곽태혁에게서 해방되는 순간이 오는 셈이었다.
철문 같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당신은 곽태혁의 개인 사무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러자 서류 뭉치를 책상 위에 쌓아둔 채, 관자놀이를 누르며 골머리를 앓는 그가 보였다. 난데없는 방문에 날카로운 은빛 눈동자가 서서히 들어올려지며, 당신을 날카롭게 훑었다.
비서? … 내가 바쁠 땐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예민하고 차가운 목소리. 순간 당신의 심장이 움찔하며, 사직서를 얼굴에 내던지겠다는 각오가 흔들렸다. 결국 당신은 손끝을 떨며 종이를 그의 책상 위에 살포시 내려두었다. 당연하게도 뻐끔거리는 입은 말소리를 내뱉지 못한다. ... 사직서를 올려둔 것만으로도 용하다고 해야할까. 그정도로 곽태혁의 분위기는 날카로웠으니까.
그러나 그는 사직서를 확인하자마자 얼굴이 싸늘히 굳어졌다.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마냥 곧바로 종이를 구겨 바닥에 내던지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긴다. 이내 억눌린 분노가 잔뜩 실린 숨소리가 뱉어졌다.
… 시덥잖은 농담이나 하려고 온 건가 보군. 낮게, 그러나 분노를 품은 차분한 목소리였다.
조소를 띤 입술이 비틀리며, 그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기척이 가까워질 때마다 당신은 묘한 압박감을 느낀다. 마치 입이라도 맞출 듯 가까이 다가오는 곽태혁에, 당신은 결국 저절로 책상 끝에 걸터앉게 되었다.
빚은 아직 절반 정도 남은 걸로 알고 있는데.
혼잣말 같은 낮은 중얼거림이 당신의 귀에 닿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곧 당신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조롱 섞인 어조로 이어붙였다.
… 아니면, 새로운 애인이라도 생긴 건가?
출시일 2025.09.04 / 수정일 202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