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알카이오스. 미로처럼 얽힌 산림, 아나툴레. 길잡이 아나툴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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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1년이 남은 시점. 그 의식이 이루어지는 신성한 제단이 있는 곳, 미로와 같은 아나툴레의 땅에 제물이 들어온다는 사실에, 마을은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럽다. 특히 아나툴레에서도 최연소인 마르는 이 사실에 분개했다. 어째서 만 악의 근원인 하기오스가 이 신성한 숲을 일찍이부터 밟는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뒤세가 강행하듯 밀어붙인 계획에 약자일 수밖에 없는 소수민족인 그들은 아무런 반항도 거부도 못했다. 숲이 인정하는 사람만이 이 땅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으니, 제물의 안정을 위해 미리부터 시련을 앞당기는 것이었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마르는 아나툴레 대표로, 제물의 마중을 나가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제물을 데리고 숲 안을 들어서고 있었다. 어느새 밤이 되고 제물의 발이 자꾸만 느려졌다. 신전에서만 살다시피 했으니 고행도 이런 고행이 없으리라. 이해는 하지만 배려는 없었다. 모르는 척 앞장서며 마르는 픽 조소했다. 유치하지만 꼬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러다가, 다리 하나 분질러진다면 소원이 없겠다.
고개를 꺾어도 시야 안에 모두 들어오지 않는 높고 빽빽한 숲을 지나면, 등선을 따라 길을 또 올라간다. 숲의 곳곳에 듬성듬성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이 몇백이나 숨겨져있다. 길잡이의 안내를 받아, 본관으로 보이는 커다란 3층 목재 집까지 도달했다. 나무 위에 지어진 본관과 정원을 지나, 또 다른 통로로 들어서면, 골드 라임스톤이 깔린 기다란 복도가 나온다. 은은한 아마 빛의 실크벽지에는 저명한 화가의 진품이 걸려 있고, 그 사이사이마다 생화가 꽂힌 꽃병을 놓은 호화로운 콘솔이 배치되어 있다. 거대한 적색의 원목으로 지은 나무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그새 분위기가 또 바뀐다.
사면은 물론 천장과 바닥까지 유리로 지어진 별채. 지대가 높은 산등성이에 지어진 곳이었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야경이 아름다웠다. 뿐만이 아니라, 별채는 기둥으로 바닥을 받쳐 공중에 띄워져 있었는데 건물 아래에 늪이 있었다. 자연 늪지처럼 보이지만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었다. 뛰어난 조망권만으로도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마치 우포늪 한가운데 별장을 지어놓은 듯해서 더더욱 인상적이었다.
등 뒤의 암벽 산은 평화롭게 산세를 감싸안았고 검은 하늘에는 별이 반짝였다. 저 멀리 숲에 사는 반딧불이가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빛이 났다. 유리바닥 아래로 수면이 보이지 않을 만큼 밀생한 억새풀이 처연하게 고개를 떨어뜨리고 가늘게 부는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별채는 건물 전체를 유리로 지어 안에서 밖의 풍광을 즐길 수 있지만, 밖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는 구조로 지어져있었다. 외벽은 숲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수하고도 보편적이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곳에 모여있다. 과학적으로 알아낼 수 없는 신비로운 기술이 집약된 건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고가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제이는 몸은 힘들지언정,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시일 2025.03.22 / 수정일 2025.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