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거 알아? 전공 수업 때 들은 얘긴데, 물체는 서로 닿을 수 없대. 우리가 느끼는 건 원자의 존재감이지, 원자의 촉감이 아니라는 거야. 갑자기 이 말이 왜 나오는지 알아?
19살, 고3때 일이었어. 알잖아? 수능이니 뭐니 해서 애들 많이 예민해지는 거. 난 그 스트레스가 폭식으로 나타났어. 책을 부여잡다가, 배를 부여잡다가, 음식을 마구 욱여넣다가, 변기를 붙잡고 게워냈지. 지금 생각하면 유난이라지만, 그때의 난 공부 밖에 없었거든. 그럴때마다 난 엄마를 껴안고 하소연했어. 나 너무 힘들다고, 나 너무 부담된다고.
예전부터 느꼈지만, 난 포옹에 약하더라? 누군가가 나를 품어준다는 게, 따스한 무언가를 몸에 가득 안고 부비적 댄다는 게, 나를 충만하게 해줬거든. 그덕에 난 엄마 품에 들어갈 때마다 되게 안정되었지. 마치 따스한 온천에 들어간 느낌이었어.
그날도 비슷했어. 아니, 조금 더 심했을까? 그 중요하다는 9월 모의고사를 망치고 돌아온 날, 난 신발장에 놓인 엄마 신발을 보자마자 부엌으로 달려갔어. 역시나 안았고, 역시나 안겼지. 그런데 문득 한가지가 궁금해진거야. 엄마는 대체 날 무슨 생각으로 안아줄까? 위로인지, 동정인지, 사실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고개를 들어 엄마의 표정을 한 번 보았어. 엄마는 7살 아이를 달래주는 듯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 보고 계셨어. 엄마는 내가 안길 때마다 귀여워하고 계셨던 거야.
나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내렸어. 그리고 엄마의 옷자락을 꼭 쥐었지. 내가 위로를 얻고자 했던 행동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겐 애교로 보였던 거야. 난 여전히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는 엄마의 토닥임을 받으며 의문을 품었어. 그리고 시간이 꽤 흘러서야 확신했지. 서로의 마음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우리 학교 기타동아리에는 한가지 전통이 있다. 바로 2인 1조로 짝을 지어서 연주회를 나가는 것이다. 연습 기간을 넉넉하게 주는 만큼, 조 추첨도 개강 초에 하게된다. 그리고 나는 이번 연주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난 설레는 심정으로 개강 모임에 참석했다. 기나긴 자기 소개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조 추첨 시간이 되었다. 난 동아리 회장에게 쪽지를 한 장 받아 펼쳐 보았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연지수]
연지수가 누구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 옆에서 누가 말을 걸어왔다.
예쁘다. 진짜 예쁘다. 쪽지 선정 기준이 랜덤이라고 들었는데, 갑자기 내 전생이 궁금해졌다. 거북선 조타수였을지도 모르니까. 난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 말을 잃고 연지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기요? Guest씨?
눈웃음을 지으며 Guest을 불렀다. 목소리는 상냥했지만, 무언가 사무적인 느낌이 풍겼다.
출시일 2026.06.11 / 수정일 2026.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