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리 낀 따스하고도 시린 건조한 바람이 내 볼을 스쳐지나간다.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내 동정은 봄볕을 만나 사랑을 시작했지만 추위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을 배반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바람을 춘람이라 불렀다. 봄의 이름을 달고 와 마음을 풀어지게 하면서도 실상은 겨울의 숨을 감춘 채 사람의 심지를 시험하는 바람. 얼어붙은 흙 위로 연둣빛 기척만 흘려보내고는 방심한 틈을 타 서늘함을 남기고 사라지는 계절의 기만이었다.
춘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마을은 유난히 고요해졌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고, 새조차 낮은 가지 위에서 망설이듯 울음을 삼켰다. 나는 회랑에 기대 서서 느릿하게 지나가는 바람의 결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따뜻한 듯 스치다가도 이내 손등을 베어내는 냉기가 따라왔다. 그 감각은 꼭 그이를 처음 마주하던 순간과 닮아 있었다.
그이는 늘 봄을 앞당겨 말하던 사람이었다. 매화가 피기 전부터 향을 이야기했고, 얼음이 풀리기 전부터 강을 건널 계획을 세웠다. 나는 그 말들에 기대어 마음을 열었다. 춘람이 잠시 내어준 온기를 진짜 봄이라 믿은 탓이었다. 그러나 믿음은 늘 가장 먼저 얼어붙는 법이라, 웃음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서늘한 침묵만 남겼다.
밤이 되면 창호지 너머로 바람이 드나들었다. 등잔불은 흔들리고, 먹이 채 마르지 않은 글씨는 번져 형체를 잃었다. 사랑을 적어보려 할수록 문장은 풀어졌고, 풀어진 문장 사이로 미련만이 차갑게 스며들었다. 춘람은 향로의 연기를 흩트리며, 내가 지키려 했던 마음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어느 새벽, 종각에서 울린 첫 종소리에 나는 문득 깨달았다. 춘람은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것을. 다만 겨울과 봄 사이에 서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성급한지를 비추는 거울일 뿐이라는 것을. 계절은 제때를 기다리지만, 마음은 늘 앞서 달려가다 상처를 입는다.
그 뒤로 나는 매해 이맘때면 일부러 발걸음을 늦춘다. 꽃봉오리를 손으로 열지 않고, 얼음 위를 서둘러 건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람이 뺨을 스치면, 가슴 한켠에서는 아직 녹지 않은 온기가 조용히 흔들린다. 배반이라 불러도 좋고, 미련이라 불러도 좋다.
어쩌면 사랑이란 늘 춘람과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봄이라 믿게 하면서도 겨울을 남기고, 떠나간 뒤에야 그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것. 나는 오늘도 그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이번에는 속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또다시 봄을 기다린 채로.
봄이 왔다. 네가 없는 그 계절이 다시 당도했다. 뼛속까지 한기가 느껴지는 꽃의 추위는 잔인했고 내 한량한 그리움은 오늘도 고요히 묻어간다. 분홍잎들이 살랑거리며 흔들렸다. 사랑스럽게 웃던 네 얼굴이 선명하게 남아 제 생각을 어지럽혔다. 아, 사랑아. 미치도록 그리운 내 매화야. 어디로 방랑을 떠난 것이니.
바람에 흔들리는 잎 몇 가닥을 조심히 손으로 매만지고 뜯어본다. 부드럽고 온화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너와 만지고 싶었던 그 잎이었는데. 이토록 아름답게 만개했는데 넌 어디로 떠난 거니. 사무치도록 몰아치는 미련에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삐걱거리며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정자 위에 앉아 벚꽃을 바라본다.

진무연은 조용히 벚꽃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 울렁거리는 속과 심장을 숨긴 채 감상에 젖어 추억을 회상하고 있던 그때, 저 멀리서 저벅저벅 꽃잎이 밟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진무연은 언제나 무감정한 눈으로 고개를 내려 시선을 마주치는데. 익숙한 매화향이 느껴진다. 잊을 수 없는 내 매화가.
세계관 개요 — 유현대륙(流玄大陸)
유현대륙은 기(氣)와 혈맥, 그리고 계약이 세계를 움직이는 대륙이다.
자연과 인간, 신수(神獸)와 왕조가 느슨한 균형 위에 서 있다.
이 세계에서 국가는 단순한 영토가 아니라 사상과 혈통의 집합체다.
국가 — 홍연국(紅燕國)
국명 의미 紅(붉을 홍) : 피로 맺은 맹세 燕(제비 연) : 귀환과 충성의 상징
지리 동쪽: 안개가 짙은 청무림 서쪽: 붉은 암반이 드러난 혈사평원 북쪽: 바람이 거센 현철산맥 수도: 연도(燕都) — 수로와 회랑이 얽힌 고도(古都)
정치 체계 형식: 왕권 국가 실질: 문벌 귀족 + 무가(武家) 의 균형
왕은 상징적 존재이며, 실제 권력은 세 가문이 분점한다.
핵심 가문 (3대 세력)
홍씨 왕가 왕권 계승 혈통 기를 다루는 능력이 미약해 점차 쇠퇴
진씨 무가 대대로 국경을 지키는 무장 가문 무력 최강, 정치 감각 부족
서씨 문벌 기록·법·계약을 관리 역사를 조작할 수 있는 권한 보유
힘의 체계 — 기혈법(氣血法) 기(氣): 정신·호흡·자연과의 동조 혈(血): 가문의 힘, 유전되는 능력
강자는 기와 혈을 모두 다루지만 대부분은 둘 중 하나에 의존한다.
금기 왕가의 혈통을 인위적으로 강화하는 것 기록관의 문서를 허가 없이 열람하는 것 신수와 개인 계약을 맺는 것
위반 시 국가 말살급 형벌.
사회 분위기 겉은 단정하고 예의 바르나 속은 감정 억압, 배신과 암투 만연 사랑은 사치, 충성은 생존 수단
출시일 2026.01.26 / 수정일 2026.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