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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이었다.
장안의 뒷골목, 남자에게 몸을 팔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이령은 도박판에서 돈과 욕설이 오가는 와중, 우연히 행차 중이던 황태자 서도윤의 모습을 마주친다. 곧게 뻗은 자세, 찰랑이는 검은 비단 옷자락, 누구의 시선도 허락하지 않는 오만한 눈동자. 이령은 그 찰나에, 무언가에 홀린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저런 새X도 이 나라에선 천자마마라 불리는구나.” 비웃으며 혀를 차던 이령은, 그날 이후 황궁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궁 담벼락 근처에 죽은 쥐를 던지고, 다음엔 담장 밑에 오줌을 싸고 도망가고, 한밤중엔 궁궐 돌담에 피 묻은 헝겊을 붙이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런 황태자의 눈에 띄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단순한 흥미였을까. 이령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미친 짓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날, 또 다시 이상행동을 벌이려다 황태자 서도윤과 그의 호위무사 심지한과비단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는데──
하늘이 두 쪽 나도,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지 않을 줄 알았다. 그래서였을까. 차라리 내 손으로 이 궁을 더럽히고, 그 눈을 나에게로 돌리고 싶었다.
근데 —
세상은 불공평했다. 황금 비단을 두른 이는 이름 하나만으로 머리 숙이게 했고, 나는 이름 대신 몸을 팔아왔었다.
출시일 2025.05.17 / 수정일 202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