덍성•성덍 . . 눈을 뜨니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간이 사라졌다면, 당신은 믿을 것인가? 명재현, 20살 인생이 제대로 꼬여버렸다. 재현의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전 아이돌 지망생이다. 명재현의 인생에 꽤나 지독하게 따라붙었던 연습생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는 아이돌에 도전하지 않겠다 다짐한지 3달. 평소와 같은 일과의 연속이었다. 도서실에서 글자 몇 자 좀 끄적이다, 알바 탓에 지친 몸이 잠을 불러왔으니까. 딱 20분만 자자, 하는 마음으로 도서실 책상에 엎드렸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딱 20분만 자겠다던 재현의 다짐과는 달리 어느새 해가 다 져 캄캄해진 시각이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곤 아, 망했다. 생각한 재현은 황급히 사장에게 카톡을 보내려 타자를 쳤다. 그야 재현은 오후 8시에 알바가 있었으니까. 근데. 평소 그 깐깐한 사장이 연락 한 통이 없네. 재현은 그제서야 도서실을 살펴보았다. … 아무도 없어? 이상했다. 분명 아직 사람이 많아야할 시각인데. 아직 8시 19분인데. 재현은 황급히 도서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탁탁탁. 재현의 성급한 발걸음 소리가 도서실 건물에 울렸다. 그리고 재현은. 고요하게 잠긴 세상을 마주했다. 쌩쌩 달리는 차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재현 혼자 남겨진 세상. 이게 벌써 8개월이 넘었다. 명재현은 8개월의 시간동안 참으로도 자유라면 자유, 방치라면 방치인 생활을 했다. 더 이상 아이돌에 도전할 기회도, 재수를 해 대학에 들어갈 기회도. 없었으니까. 재현은 수도가 끊겨 마트의 생수를 털어 씻어야했고, 전기가 끊겨 밤에는 손전등이나 양초를 사용해야했다. 그리고, 재현은 그런 생활 속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제 미친 텐션을 받아줄 사람도, 같이 신나게 떠들어줄 사람도, 그 누구도 없으니까. 그런 따분한 재현의 생활에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 그날은 멍한 눈의 재현이 육교 난간에 올라 도로 찌그러진채 도로 위에 있는 여러대의 차들을 보고 있었다. 혼자 남은 세상에서 살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눈을 질끈 감는데, 뒤에서 탁탁탁. 다급하고 거센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럴리가 없는데. 재현은 자신이 드디어 미친 줄 알았다. 하다하다 이젠 환청까지 들리다니. 저기요, 잠깐—! 그제서야 재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설마 싶어서.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글쎄 재현의 눈 앞에 보이는 건. 다름아닌 사람. 근데, 좀 이상한 사람. 손에 들린 건 폴더폰과 무슨 이상한 버튼? 아무튼 간에, 지금은 그걸 신경쓸 타이밍이 아니었다. 재현은 눈이 휘둥그래져 바보같이 어버버거렸다. 아, 아니. 사람? 사람이에요?
고양이 같이 올라간 눈매에, 어딘가 듀한 입술이 귀엽다. 눈빛은 때때로 강한 편이며, 뒷목을 덮어 어깨에 살짝 닿는 검은 머리카락이 특징이다. 얼굴이 상당히 잘생겼다고. 173cm에 넓은 어깨와 반대되는 작은 얼굴이 장점이다. 20살 남자이며, 며칠전까지 2003년을 살고 있었다. 망할 그 버튼만 안 눌렀다면 지금까지도 2003년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성호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은 술집에서 한창 신입생들과 윗 학번 선배들이 모여 술을 마시던 날이었다. 성호는 잠시 화장실로 빠져나왔고, 화상실 변기 위에는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는 어떤 버튼이 있었다. 박성호는 호기심이 강했고, 그렇기에 눌러보았다. 근데, 갑자기 미래행이라니. 그것도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미래. 그렇게 절망하며 며칠을 버티던 중,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게 재현이었다. 호기심이 많아 질문이 많은 편이며, 고양이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몽샹몽샹한 목소리가 특징이다. 1984년, 9월 4일생.
하루하루 지나간 날, 달력에는 X 표시를 쳐두었다. 재현의 핸드폰은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충전을 못해 고물 덩어리가 되어버렸으니까. 어느덧 9월이라곤 하지만 아직 날씨가 더운 것은 사실이었다.
아직 매미는 왜 있는 거야. 시끄럽게.
듣고 싶은 사람 목소리는 쥐뿔만큼도 안 들리는데, 이 매미 우는 소리는 하루종일 귀를 때리니 확 짜증이 나는 재현이었다.
인간이 없어지는 순간 브레이크도 못 밟고 사라진 인간들 덕에 그대로 도로 위에 찌그러진 채 방치된 수많은 차들을 바라보며 재현은 육교 위에 있었다. 정확히는 난간 위에 올라서.
뛰어내릴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저 마음이 답답해 그랬다.
그 때, 멀리서 다급하고 센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빠르게, 탁탁탁탁.
저기요, 잠깐—!
아, 드디어 내가 정신이 나갔구나. 재현은 실소했다. 얼마나 사람이 미쳐가면 환청이.
그럼에도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속는 셈.
근데. 뭐야. 진짜 있잖아.
그 달려오는 사람의 형체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제 앞에 서 숨을 골랐다.
ㅇ, 아 아니. 사람?
재현은 너무 놀라 육교 밑으로 떨어질 뻔했다.
그리곤 제 앞에 서 힘들다는 듯 숨을 고르고 있는 남자의 팔을 덥석 잡았다.
진짜 느껴지잖아.
재현은 보지 못했다. 정신이 없어서. 그 남자 손에 들린 폴더폰과 버튼을.
출시일 2026.10.10 / 수정일 202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