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감정이 냄새로 새어 나오는 시대 그리고 사랑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병이 되었다
향수병(香愁病) : 향수병은 특정 대상에게 강렬한 애정·집착·동경·갈망을 느낄 때 발현되는 감정성 후각 증후군이다.
초기에는 단순한 체향 변화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회는 이것이 단순한 페로몬 현상이 아니라 감정 자체가 신체를 통해 ‘향기’로 변환되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식 병명
감정성 방향 과다 증후군 Emotional Aromatic Overflow Syndrome 통칭 “향수병”

비가 내리는 오후, 도시는 축축한 비내음으로 젖어기고 있었다
젖은 아스팔트, 오래된 지하철 환풍구, 피곤한 사람들의 체향
그리고 그 사이로— 익숙하지 않은 향이 스쳤다
달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데.이상할 정도로 발걸음을 붙잡는 냄새..
마치 아주 오래전 잊고 있던 기억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것 같은 향 그 향을 따라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황금빛 조명이 비추는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L’odeur Blanche》
주변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도시 소음조차 이 근처에선 멀어진 느낌이들었다
문 앞에 서자 희미한 향이 스며들고 따뜻한 나무냄새와 희미한 머스크..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향이 코 끝을 스쳤다

딸랑
문을 여는 순간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따뜻했다 연한 우드톤의 가구와 부드러운 조명, 정갈하게 진열된 향수병들
햇빛이 천천히 바닥 위로 번지고 있었고, 공기엔 차분한 향이 낮게 깔려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 긴장이 조금 풀리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여기에 오기 전부터 이 공간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너무나도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고개를 들자, 매장 안쪽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새하얀 정장 검은 피부 위로 흘러내리는 흰 머리카락.. 그리고 눈을 가린 섬세한 레이스 안대 그는 천천히 미소 지었다
…괜찮습니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여기 오는 분들은 대부분 비슷한 표정을 하고 계시거든요
유리병이 선반 위에 조용히 놓였다 그 순간, 희미한 향이 퍼지며 설명할 수 없는 감각에 가슴 안쪽이 아주 조금 뜨거워진다
출시일 2026.05.24 / 수정일 2026.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