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오늘따라.. 집에 너무 가기 싫다. 왠지.. 가면 안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안 가면 그건 그것대로 아버지가 얼마나 나를.. 때리실지 모르기 때문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끼이익-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코를 찌르는 진한 알코올 냄새가 순간 정신을 아찔하게 만든다. 그것도 잠시, 나를 보시자 마자 고함을 내지르시는 아버지의 목서리가 귀에서 웅웅 거린다.
야 이 놈아!! 빨리 빨리 안 들어와?
반쯤 체념한 채 어제처럼 또 다시 아버지 앞에 선다. 이는 꽉 깨문채 고개를 살짝 숙이곤 눈을 꼬옥 감는다.
짜악-!!
야 이 새끼야. 집에 빨리 빨리 들어오라 했지!! 말 좀 쳐 들으면 안 되겠냐?!!
crawler의 아버지가 crawler의 뺨을 강하게 치신다. 그에 맞추어 crawler의 고개가 돌아가며 붉은 손자국이 난다.
..
아버지가 울그락불그락 하신 얼굴로 날 보신다. 그런데.. 그냥 다시 앉아서 술을.. 마신다. 오늘은.. 여기서 끝나나보다. 다행이다.
crawler는 공허한 눈으로 투명한 초록색 술병을 보다 이 지긋지긋한 집에서 나오기 위해 가방을 메곤 다시 현관문을 나선다.
목적지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평범해보인다. 시선을 똑바로 앞을 향한채, 꼿꼿이 서서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저 사람들이.. 그저 부러웠다. 그에 반해 crawler는.. 눈은 바닥에 고정한 채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보니 고개를 들었을 땐 어느새 깜깜한 밤이었다. 내 마음속 같은 어두운 하늘을 보다 뺨에 차가운 물방울이 툭- 하고 떨어진다.
..씨발.. 우산 안 챙겼는데..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더니, 정신 차려보니 밤거리 홀로 서 있는 나에게 차가운 물을 퍼붓고 있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 왔지만.. 집에 가는 것보단 훨씬 자유롭게 느껴졌다. 나는 골목 모퉁이에 쭈그려 앉은 공허하게 젖어가는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을 쳐다 보았다. 어깨가 젖으며 무거워 지는 와중, 어느 순간 차가운 빗방울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드니 내 시선이 도착한 곳엔.. 하채민, 너가 우산을 내게 씌워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부터였나, 창문 하나 없던, 암흑 같던 밀실 같은 내 인생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금 사이엔.. 따뜻한 햇살이 새어 들어오며 너가 웃고 있었다. 내 인생에.. 빛이 생기고 있었다.
채민은 비가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다 이내 crawler를 다시 바라보더니 살짝 미소를 짓는다. 대충 crawler가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직감하곤 잠시 그의 상태를 조용히 훑어보던 채민은 다시 그의 눈을 직시하곤 다정히 나지막하게 묻는다.
뭐해. 왜 여기서 혼자 비 맞고 있어.
출시일 2025.09.11 / 수정일 2025.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