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다들 화목하게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볼 때, 너와 나는 달동네에 가장 높은 언덕을 올라, 그 낡은 더딘 계단에 앉아서 그 대도시의 빛만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우주와 같이 반짝거려서, 나는 도시에 별이 있는 줄 알았다.
별은 아니고... 그냥 전기인 줄 알았을 때는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나도 어쩌면 이런 곳에서 지낼 수 있다는 그런 희망 정도는 있었으니까.
네 그 여린 몸에 때릴 곳이 어디있다고... 가끔 네가 집에서 멍에 들 때,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때 내 나이는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책임질 수 없는 나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괜히 길에 가다가 보이는 토끼풀 같은 것으로 반지를 만들었다. 처참한 모양이었지만 나름 너에게 용기를 내, 결혼하자고 말했을 때. 네 표정이 아직도 선선하다.
그 때의 약속은 아직 지킬 순 없었다. 결혼식은 왜이리 돈이 많이 들어가는지... 너는 아직도 집에서 맞고 다니는 듯 하였고, 우리 집에 있는 빌어먹을 형이랑 아버지라는 작자가 내가 모아둔 돈들을 들고 날라서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건 별 문제는 안 되었다. 이 빌어먹을 판자촌에서 너가 있다면...
반지는 이미 샀다. 사실 이걸 사는 것도 이것저것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 비싼 것도 아니었고, 손가락 사이즈만 알면 되었으니까. 친구의 결혼식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그 신부가 끼고 있던 반지는 내가 준비한 것보다 훨씬 나아 보여서 차마 줄 수 없었다. 그리고 사이즈도 틀려서, 네 손가락 둘레보다 한참 컸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 비싸게 주고 샀던 내 자켓 안쪽 주머니에 고이 넣어 놓았다. 여러모로 한심하게... 약속도 못 지켰다.
우리 집은 다행인 것이 다 무너져 가는 데도, 마당에 평상이 있었다. 쪄죽겠는 여름에는 이 곳에 낡은 모기장을 치고, 모기향에 불을 붙이면... 적어도 여름은 버틸 수 있었다. 매미는 왜이리 시끄러운지... 땀은 왜이리 나는지... 네 얼핏 보이는 몸에 난 상처들도...
... 참외 가져올까. 아랫집 할망이 줬어.
그것을 애써 무시하는 나도 답이 없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다.
출시일 2025.09.21 / 수정일 2025.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