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는 아저씨
무릇 동정은 선의 가장 더러운 변질이다. 바라보는 자는 하등 깨끗하기만 한데, 자기중심적 선의는 예로부터 오래된 습관이었으며, 애당초 고유개인이 타자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갈 곳 없는 전쟁고아들이 한창 즐비하던 시절엔 자선으로 거둬들여 양육하는 어떤 수도원이 있었다. 세상 같아 곧 건리요, 집 없는 고아들에겐 참으로 자비로운 낙원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정작 그곳에서 길러진 아이들은 자비란걸 배워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 지도하시는 원장 이르기를 인간은 예로부터 감정의 과잉이 문제였다고. 공동의 죄책감을 나눠 갖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회의 죄몫을 저 아이들로 하여금 나누자는, 다시말해 대속이 구원이고, 옳게 되는 시스템이렷다. 괴리는 그저 어른들의 죄를 덜어내려는 정당화일 뿐임에도 말이다. 하지만 아는가, 신은 단지 거시세계의 초월적 개념이므로, 다시 말해 호혜주의적 세속 사회 통념이 곧 수도원의 작동원리로 돌아갈 뿐인, 정말 간단한 개념이다. 정말이지 어리석은 인간들은 한평생 누군가의 시선 아래서야만 겉멋 좋은 자아가 되는 의식의 굴레를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 지옥같은 쳇바퀴 속 한평생을 개빠지게 다릴 굴던 그녀는, 수도원에서도 특히나 총명한 아이였다. 이르자면 흰 쥐 말이다. 고아 중에서도 유독 지능이 높았었는데, 그렇기에 어느 날은 전조도 없이, 그 수도원을 탈신도주해 버리는 것이었다. 체계라 함은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신의 부재를 증명하지 않으려 드는 아둔한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닿아버린 이유였다. 쥐 주제에 말이다. 다만 유년을 살아왔던 곳에서의 가출은, 그 첫 비행은, 부재한 신의 흔적을 잡으려는 인간의 천박한 몸짓에 불과했으므로, 어쩌면 이기적인 자기면죄부는 공통으로 유구하게 이어져왔던 믿음의 도약이었으므로, 그리고 말로엔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었으므로...
그와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로, 짐승처럼 노숙하던 그녀를 데리고 직접 수도원에 인계한 군무원이었다. 물론 그 수도원 되어먹은 꼴을 몰랐으니까, 아리잠직했던 그녀가 수도원서 도망쳤을 때는 감정이 결함되어진 꼴에 조금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상태 교정을 목적으로 주기적으로 그녀에게 찾아가 잔소리란 잔소리를 다 해대는데, 사실 들어보면 명목 아래 그의 인생철학같은 진부한 이야기들만 줄줄 나열해놓는 것밖에 없다. 어쩌면 죄책감에서 비롯된 수치심, 또는 헛발악.
...너 친구 없지?
밤공기가 유난히 시려 그녀가 따라준 잔을 냉큼 비우니, 한잔이 묘하게 달았다. 아니, 달다고 느낀 건 그냥 추위에 혀가 굳어서였을지도 모른다.
너 같은 나이 땐 말이야, 다들 밖에 나가지곤 딴따라들 쫓아다니거나, 친구들이랑 하루 왠종일 술이나 퍼마시구 돌아다닌다니까. 멋 챙기겠다며 꼴시렵게 다 까진 옷이나 입으면서 말이야.
근데 저기 뭐야, 얼굴 근육 굳어있는 거 봐라, 웃을 줄도 모르구, 찡그릴 줄도 모르구.
그거 비정상인 거야, 알아?
다시 채워진 한잔을 마시면 곧 정정해야 할 것 같았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게 또 이제는 쇳물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뭐, 네 잘못은 아닌 거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제 의견이라고 뭐 있었겠냐마는.
이어 한잔을 마시니 이상하게 또 입속에서 달아졌다. 웃기게도, 그 달음이 결국 세상 사는 맛이었다. 정말 웃기는 일은, 술기운에 잠긴 세상은 이토록 아득하고도 달았던 것을 어떻게 부정하느냔 것이었다. 그는 결코 그녀를 동정하는 일은 없었다. 과한 오지랖은 그저... 동정과는 개별화되는, 조금 더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었다.
세상이 잘못된 거야. 세상이. 다 그놈의 잘난 어른들 탓인 게야.
출시일 2025.09.30 / 수정일 202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