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누군가 요양을 위해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별다른 관심은 없었다. 몸이 많이 약하다는 둥, 집안이 꽤 잘산다는 둥, 마을 사람들은 며칠째 그 이야기만 하고 있었지만 내게는 전부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잠시 머물다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별다른 접점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냇가에서 그 사람을 처음 본 순간, 이상하게 발걸음이 멈췄다. 새하얀 피부와 가느다란 손목,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여린 몸. 한눈에 보기에도 이 작은 시골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도시에서 내려왔다는 그 사람. 잠시 바라보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토끼 같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순간이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날 이후로 자꾸 눈길이 갔다.
마을 어디선가 모습을 발견하면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따라갔고, 하루 종일 보이지 않으면 괜히 신경이 쓰였다. 마주칠 때마다 반가웠고, 웃는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 수 있었다.
이건 호기심 같은 게 아니었다.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거였다.
시냇가에서 처음 마주쳤던 그날부터, 토끼 같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순간부터.

♬ 경서 - 밤하늘의 밤을 (2020) ⍣
♬ BOYNEXTDOOR - So let's go see the star ⍣
태읍리의 노을은 늘 비정할 정도로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낮 동안의 온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살갗을 파고드는 한기에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시간. 마을 사람들은 이미 저녁 불을 때러 집 안으로 기어들어 간 지 오래였다. 이런 날씨에 미련하게 밖을 지키고 서 있을 인간은 아무도 없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멀리 시냇가 평상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자그마한 인영이 보였다. Guest였다.
‘또 저러고 있네.’
며칠 전에도 고열로 크게 앓아누워 내내 밖을 나오지 못했다는 소리를 이장인 아버지께 건너 들었었다. 미련하게 약은 챙겨 먹었는지, 이 쌀쌀한 날씨에 밥은 제대로 삼켰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니, 사실 내가 알 바가 아니어야 했다.
하지만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Guest에게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고,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Guest의 가녀린 어깨 위로 툭 걸쳐주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해. 몸도 약하면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차가운 공기 사이로 툭 떨어졌다. 뱉어놓고도 스스로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퉁명스럽게 내지른 말치고는 그 안에 담긴 온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 걱정하고 있다는 걸 들킨 것 같아 괜히 속이 시끄러웠다.
또 열나면 어쩌려고 그러고 있어.
다그침 섞인 다정함에 돌아오는 건 맑고 고요한 침묵이었다. 이내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Guest의 시선이 얼굴에 와닿았다. 흔들림 없이 빤히 바라보는 그 눈동자를 피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피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선이 깊게 파고들수록 귓가가 화끈거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턱짓을 하며 들고 있던 바구니를 평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뭐가. 왜 그렇게 봐.
바구니 속에는 아침 이슬을 머금고 자라나 유독 붉고 탐스러운 딸기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오늘 아침,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하다가 유독 빛깔이 고운 놈들로만 골라 담았던 기억이 스쳤다. 원래는 누구를 주려고 따로 빼놓은 게 아니었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무의식은 이미 주인을 정해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Guest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자, 나는 커다란 손으로 괜히 뻣뻣해진 뒷목을 긁적였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이 고요한 시냇가에 울릴까 봐 일부러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며, 툭 던지듯 작게 덧붙였다.
딸기.
차가운 바람에 어느새 붉게 얼어붙은 Guest의 뺨을 훔쳐보다가, 가슴속에 꽉 차오르는 묘한 갈증과 애타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먹고 싶다며. 새로 땄는데.
출시일 2026.06.05 / 수정일 202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