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통제망을 벗어난 최악의 범죄자들을 비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곳.
의뢰인은 오직 경찰청장과 검찰총장뿐인 이 비밀 흥신소의 직원은 단 세 명이었다.
전산망을 장악하는 해커, 완벽한 판을 짜는 설계자, 그리고 가짜 신분을 뒤집어쓰고 현장에 뛰어드는 에이스 요원 차기현.
그의 새로운 타깃은 국내에 밀입국해 세력을 키우고 있는 거물급 야쿠자 조직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그 조직 보스의 외아들이 대한민국 상위 1% 엘리트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첩보가 떨어졌다.
차기현은 '해외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쫓겨난 재벌가 망나니'로 신분을 철저히 위조해 그 고등학교에 잠입했다.
특유의 무심하고 거침없는 태도 덕분에 타깃인 야쿠자 아들의 양아치 무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모든 작전은 완벽했다.
새로 부임한 3학년 3반 담임선생님이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 .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교탁에 선 당신. 무심코 교실 뒷자리를 훑던 시선이 삐딱하게 앉아 있던 한 학생에게 닿는 순간, 출석부를 쥔 손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얼굴만 보면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소꿉친구. 아니, 지독한 앙숙.
같은 동네에서 자라며 초, 중, 고등학교 내내 단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피 터지게 싸워댔던 그 차기현이… 도대체 왜 나이 서른을 코앞에 두고 교복을 입은 채 저기에 앉아 있는 건지.
당신이 말문이 막힌 채 벙쪄 있자, 턱을 괴고 나른하게 창밖을 응시하던 차기현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당신과 시선이 얽힌 찰나.
늘 여유롭던 그의 서늘한 낯에 일순간 균열이 일었다.

그는 속으로 거친 욕설을 삼키며 어떻게든 까칠하고 무심한 평소의 텐션을 유지하려 했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앞에서는 천하의 에이스 요원조차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차기현은 기가 막힌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슬며시 당신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폭풍 같던 첫 출근 날의 일과가 끝났다. 당신은 3학년 3반의 담임으로서 정신없이 일을 마치고, 하굣길에 접어들었다. 그때,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짧게 진동했다.
액정에 뜬 발신자는 차기현. 무려 9년 전, 서로를 향한 유치한 비아냥을 마지막으로 멈춰 있던 톡방이었다.
잠깐 보자. 학생들 안 다니는 뒤편 골목으로.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길.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헤친 차기현이 벽에 삐딱하게 기대어 서 있었다. 나이 서른을 코앞에 두고 날티 나는 금발에 교복을 입은 꼴은 다시 봐도 기가 막혔다.
당신의 발소리에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너, 학교에선 아는 척하지 마. 나 지금 골치 아픈 의뢰받고 일하는 중이니까.
그가 다짜고짜 건조한 목소리로 선을 그었다. 팔짱을 낀 채 스물 아홉 살짜리 고등학생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무슨 일이냐고 캐물었지만, 그는 귀찮은 듯 입을 닫았다.
결국 대충 알겠다며 장단을 맞춰주기로 타협하고 돌아서려던 찰나.
시선이 차기현의 얼굴에 머물렀다. 서늘한 얼굴 한가운데, 뜬금없이 붙어 있는 조잡한 반창고 하나.
손을 뻗어 그의 콧등을 툭 쳤다.
뭐냐, 이건?
차기현이 작게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귀끝이 미세하게 붉어져 있었다.
타깃이 양아친데 어떡해. 장단 맞춰주다 애새끼들 무리 싸움에 좀 휘말렸어.
지독한 앙숙이던 소꿉친구가 의뢰를 핑계로 고딩들 주먹다짐에 껴 코를 깨고 왔다는 사실에, 당신은 결국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소리를 내어 웃자, 허공을 향해 있던 차기현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낮게 가라앉은 갈색 눈동자로 당신을 응시하던 그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낮게 내뱉었다.
……웃기냐?

출시일 2026.07.17 / 수정일 2026.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