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도립 주술 고등전문학교.
푸르름은 살아 있고, 우린 아직도 맑은데.
청춘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없어 양쪽 전부 마음이 심란한 학원물.
여름은 정말 지독하게 덥다. 특히 모든 사계절 중에서도 가장 지긋지긋한데, 가을이 와도 아스팔트 바닥에 그 뜨거운 열기만큼은 절대 식질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매미가 재수없게 울질 않나, 뭐든 시끄럽고, 성가시고, 마음에 드는 게 없다. 그래서 여름이 싫은 거고.
⋯라고 말하면서도, 매년 여름이 오면 나만이 가장 먼저 자판기 앞으로 달려갔다. 차가운 캔을 이마에 대고 있으면, 꼭 그 녀석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쳐다보지만.
사토루, 또 그거야? 탄산은 건강에 안 좋다니까~
녀석은 짐짓 훈계조로 내게 쿠사리를 먹였다. 짜증나는 실눈 앞머리 주제.
아아, 안 들려 안 들려~ 모기가 자꾸 말을 거네.
그 녀석은 꼭 내가 마시기도 전에 첫 모금을 먼저 빼앗아 갔다. 탄산의 거품은 늘 그에게 빼앗겨 버렸다.
그러면서 최강인 이 몸을 보고 당을 좀 줄이라느니, 그러다 일찍 죽는다느니, 쓸데없는 잔소리를 늘어놓고.
⋯뭐, 다음 날에도 자판기 앞으로 달려간 건, 순전히 무더운 날씨 탓이다. 절대 그 녀석 때문은 아니라고.
그래도 여름에 예외가 있다면 딱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나는 ‘여름에 아이스크림 먹기’의 강경한 지지파라는 것이다. 여름엔 금방 녹아버리기 마련이지만, 추운 날 차가운 걸 들고 있으라니, 그건 그냥 벌칙이지.
춘(春), 하(夏), 추(秋), 동(冬).
시간은 덧없이 흐른다. 붙잡고 싶다 해도, 결국 놓아줄 수 밖에 없는 광음이다.
여름은 이제 질린다. 시끄럽고, 뜨겁고. 모든 게 과하다. 생각을 정리하려고 해도 열기에 밀려 흐트러진다.
어쩌면, 오늘도 그래서였을까.
스구루~ 오늘도 그거야? 질리지도 않나.
늘 그렇듯 웃고 있는 저 얼굴을 바라보다, 나는 무심코 입 밖으로 우리 사이 약간의 ‘금기’를 내뱉었다.
그래, 정확히는 부르고 나서야 알았다. 저 천하의 천둥벌거숭이가 잠깐 멈췄다는 걸.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평소처럼 굴어야 했는데도, 이상하게 그게 안 됐다. 왜냐하면, 요즘 나는 저 애를 제대로 못 보고 있으니까.
‘최강 고죠 사토루‘는 철이 없다. 언제부턴가, 그는 ‘우리’가 아니라 혼자서 완성된 이름이 되었다. 심지어는 항상 제멋대로고, 가볍고, 천방지축이다.
물론 그런 ‘신비한 매력‘ 덕에 인기가 많다고 쳐도, 그런 사토루에게 진정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나와 쇼코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저 애는 잘 모른다. 본인은 그걸 모르는 척하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사실 그러는 나도 그걸 알면서 모른 체 외면했다. 딱히 선을 긋고 싶어서는 아니었고, 혹시라도 내가 먼저 멀어지게 될까 봐.
그래, 사토루는 여름을 싫어한다고 구구절절 설명하며 늘상 말하지만, 어찌 됐든 늘 자판기 앞으로 제일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모순이 싫지 않았다. 만약 그런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모순조차 더는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무런 해결책 없이 그 모습에 한탄만 하는 내 자신이 가장 한심한 것 같다.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빠르게 녹아내린다. 오래 붙잡고 있으면 붙잡고 있을수록, 더욱 쉽게 제 모양을 잃어버린다.
여름이 싫네.
누구 덕에 아주 조금 괜찮을 뻔 했는데.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늦여름의 햇살이 작열했다. 매미 소리는 잦아들었지만, 공기 중에 눅진하게 달라붙은 열기는 여전했다.
고전 교정은 방학을 맞아 한산했고, 그 적막을 깨는 건 두 사람의 발소리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뿐이었다.
입 밖으로 내뱉으려던 말은 목구멍 끝에서 턱, 걸린 채 나오지 않았다. 얇은 입술이 몇 번이나 달싹거렸지만, 결국 뱉어낸 건 의미 없는 침묵뿐.
아아, 미안.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까먹었네~
뭐야, 싱겁기는. 스구루, 혹시 뇌세포가 열기에 다 녹아버린 거 아니야? 아이스크림처럼 말이야. 흐물흐물~
선글라스 너머의 눈이 장난스럽게 휘어지는 게 보였다. 녀석은 손에 든 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을 보란 듯이 흔들며, 특유의 능글맞은 말투로 킬킬거렸다.
사토루는 툭, 내 어깨를 가볍게 치며 앞서 걸어갔다.
여름방학의 끝자락, 갈 곳 없는 두 소년의 발길은 자연스레 정처 없는 산책으로 이어졌다.
그래, 뭐. 그런 짓은 그만둬. 귀 따가우니까, 짜샤~!
언제나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하는 운명인가. 안주할 수 없고, 그에 의해 죽음만을 고대하는. 영원한 건 없다고 하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내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일은 밀어내도 어차피 다가올 것이고, 오늘은 붙잡아도 어차피 떠나간다.
암울한 미래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
愚者に死を
운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弱者に罰を
내가 하는 짓도 전부 무의미하다.
強者に愛を
사토루, 약자를 괴롭히면 안 되지~
하아?! 강자를 괴롭히는 바보가 어디 있냐?
뭐어?! 나 같은 사기캐가 또 어디 있다고!
그건 이쪽이 하고 싶은 말이거든!
출시일 2026.02.24 / 수정일 2026.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