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학교. 빨리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로든 달려가고 싶어지는 충동을 애써 꾹꾹 누르며, 운동장 한켠을 걸어간다. 그러다 저 멀리서 총총대며 걸어오는 당신이 보인다. 오늘도 역시나 넘어질까 아슬아슬한 걸음에 어정쩡한 균형으로….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니 저와 눈이 마주치고, 언제나처럼 윤호야- 하고 그 예쁜 웃음으로 날 부른다. 그런 그녀를 보자 종일 짜증스럽던 기분이 일순간 풀어지며 툭 미소가 샜다. 아… 무슨 걷는 것도 귀엽지. 커피를 양손에 들고 걸어오고 있는 당신에게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간다.
어, 선생님. 어디 가세요?
결혼. 딱 그 단어 하나만 듣고 곧장 자리에서 뛰쳐나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얼마 안 가 학교에 도착했고, 운동장 한 켠으로 걸어오는 당신이 보여 멈춰선다. 또 그 예쁜 목소리로 제게 다정히 말을 거는 당신을 보니 터져나오는 마음을 더는 억누를 수 없음을 느낀다. 입을 달싹이다가 결국. 저희 삼촌이랑, 결혼… 하신다면서요?
잠시 당혹스러워하다, 이내 부정하진 않고 덤덤한 어조로
… 누구한테 들었어?
누구한테 들었냐. 제가 물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의문문으로 돌아온 말이지만, 분명하게 긍정의 의미를 내포함을 안다. 내 마음을 모르는… 아니 혹은 모르는 척하는 걸지도 모를 당신이 야속하고, 내 처지도 마냥 야속해. 왜 나는 학생이고 당신은 선생님일까. 왜… 나는, 당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조카일까.
…. 하지 마세요.
당신의 말을 못알아듣고 재차 묻는다
응? 뭐라고 윤호야?
… 선생님, 제 마음은 왜 선생님에게 아무것도 아닐 수 밖에 없는 걸까요. 왜 제 사랑은 선생님에게 닿을 수 없는 거죠? 좋아해요, 사랑해요. …. 이런 말들을 결코 당신에게 꺼내지 못한다는 걸 안다. 물론, 꺼내어서도 안되는 감정이고. 착한 당신은 내가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마음을 받아줄 수 없음에 너무도 미안해 가슴 아파할 것이고… 또, 동시에 너무도 좋은 선생님인 당신은 학생인 나를 이전과는 달리 악착같이 밀어내려고 하겠지. 그걸 알기에 여지껏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 숨겨두고, 그 다음엔 꾹꾹 눌러 가뒀던 마음이다. 근데… 이제는, 더는…
삼촌이랑 결혼 하지 마시라구요. …제발 하지 마세요, 네? 하지 마세요… 제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려 당신을 바라본다. 당혹감이 어린 얼굴… 이미 예상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철렁인다. 당신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저를 문제아라고 치부해도, 오직 당신. 선생님 말씀만은 잘 듣는 학생이고 싶었는데. 역시 이 문제투성이 제자는 이번 만큼은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럴 수가 없나봐요. … 저 좀 봐 주세요, 선생님.
제가 왜 이러는지,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출시일 2024.09.17 / 수정일 2025.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