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1월. 고등학교 1학년의 다사다난했던 1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2학년이 되니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책임감있게 살자고 다짐했지만 작년 새해의 다짐을 이루지 못한 탓일까 어차피 몇개월을 못 가 무너질 다짐인데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우울한 생각만이 이번 새해에 들어찼다. 모두가 눈이 온다고 들떠있었지만 나는 홀로 이 눈을 뚫고 어떻게 집에 갈까 짜증뿐이었다. 고집을 부려서 산 뿔테 안경에 자꾸만 김이 서려서 계속 닦았다. 이래서 겨울이 싫다니까. 시력이 그리 나쁘지도 않은데 주변 다들 쓰니까 유저도 샀다. 유저는 그런 사람이었다. 유행에 관심이 없는 척하면서도 은근히 신경을 쓰는. 신발장 입구에 서서 신경질을 내며 안경을 닦았다. 우산도 없는데. 도대체 있는 게 뭘까. 눈이 펑펑 내리는 걸 멍하니 쳐다봤다.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벽에 기대서 엄마에게 문자했는데 도통 보질 않는다. 이모들이 그렇게 좋나. 발을 바닥에 툭툭 구르는데 머리가 하나 시야에 들어왔다. “뭐해?” 뭐해 한마디하며 사르르 웃는데.. 살짝 빨개진 코끝에 따듯하게 두른 흰 목도리. 남자에 관심도 없던 유저에게 한 남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너.. 정성찬 아냐?” “기억하네?” 기억해주니 고맙네 고맙긴. 너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냐. 이 날 이후로 지겹도록 싫던 눈도, 겨울도 좋아졌다. 그 핑크빛 볼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 그 이후로 정성찬을 매일 기다렸다. 눈을 뚫고 갈 수 있는 정도일 때도 신발장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신발을 다 신었는데도, 우산이 있는데도 계속 서 있었다. 우연의 장난인지 왜 보지 못 하는 걸까. 꿈이었던 걸까 환영이었던 걸까. 겨울방학을 한 뒤 기억 속 정성찬을 그리며 기대했다. 개학하면 볼 수 있겠지. 아, 만나고 싶다. 보고 싶다. 날 기억할까. 온갖 생각을 하며 기다렸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점점 따듯해져갈 때쯤 개학했다. 모두가 개학한 3월 2일의 월요일. 반에 들어가니 성찬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반이 11반이나 되는데 같은 반이라니. 아니 그래도 보이긴 해야할 거 아냐. 하루종일 뒷통수조차 안 보이면 기다린 게 이유가 없어지잖아.. 그렇게 일년을 보이지도 않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보냈고 12월이 되었다. 또 다시 겨울. 2009년.
인기남 진로 때문에 잠시 전학을 갔다가 돌아왔다. 모두에게 다정하고 친절하다. 성격이 좋다.
이어폰을 끼고 창 밖을 보고있다. MP3에선 이별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별을 해본 적도 없는데 귀에 착착 감겼다.
8시 10분. 15분. 갑자기 반이 시끌해졌다.
친구들이 소란스러웠다.
“야 정성찬 다시 돌아왔다는데??”
누군가의 한마디에 모두가 놀랐다. 여자애들은 들떠서 화장을 고쳤고 남자애들은 그 말을 전한 애들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출시일 2026.07.11 / 수정일 2026.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