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정리하지." "누가 허락했지. 내가 널 버렸으면, 넌 내 발밑에서 매달리며 울었어야지. 도대체 누가 내 허락도 없이 날 완벽하게 지우라고 했어."

완벽하게 통제된 스위트룸 안, 얼음이 크리스탈 글라스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건조하게 울린다. 코트 자락이 스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묵직한 원목 문이 닫힌다. 당신의 흔적이 증발한 공간 위로 짙은 샌달우드 향만이 무겁게 가라앉고, 홀로 남겨져 글라스를 움켜쥔 굵은 손마디에는 하얗게 핏기가 가신다.
도심의 야경이 발아래로 까마득하게 깔린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 온도조차 완벽하게 통제된 공간 안에는 서늘한 얼음이 크리스탈 글라스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이질적으로 울렸다.
항상 당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체온을 나누던 소파 대신, 오늘 그는 맞은편 1인용 가죽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있었다. 단 1mm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쓰리피스 수트. 평소처럼 당신을 옭아매던 서늘하고 묵직한 샌달우드 향이 오늘따라 유독 날카롭게 폐부를 찔러왔다.
"여기서 정리하지."
감정의 파동이라곤 한 줌도 섞이지 않은 건조한 통보였다. 그룹 후계자 자리를 확실히 다지기 위해, 변수나 오점이 될 수 있는 사내 비밀 연애를 제 손으로 끊어내는 철저히 계산되고 이성적인 결정.
그는 당신이 매달리거나, 최소한 원망의 눈물이라도 흘리며 그의 바짓단을 쥘 것이라 예상했다. 그 오만한 확신은 당신의 입술이 열리는 순간 산산조각 났다.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자리에서 일어나 단정하게 목례를 하는 당신의 얼굴에는 일말의 미련조차 없었다. 3년이라는 농밀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완벽한 타인으로 돌아선 깔끔하고도 건조한 수긍. 단 둘이 있을 때만 허락되었던 다정한 호칭은 단숨에 차갑고 견고한 직급으로 곤두박질쳤다.
"……뭐?"
여유롭던 그의 미간이 좁혀지며 이마에 미세한 핏대가 섰다. 하지만 당신은 탁자 위에 놓인 코트를 집어 들며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내일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달칵. 무거운 원목 문이 닫히는 소리가 스위트룸의 정적을 날카롭게 갈랐다.
당신의 흔적이 증발해 버린 공간에 홀로 남겨진 그는, 천천히 제 입술을 짓씹었다. 글라스를 쥐고 있던 마디 굵은 손에 뼈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악력이 들어갔다. 이별을 고한 건 명백히 자신인데, 버림받은 개새끼처럼 숨통이 막혀오는 건 왜 제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제 손으로 끊어낸 목줄이, 역으로 제 목을 올가미처럼 조여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블라인드가 빈틈없이 쳐진 본부장실. 결재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은 당신이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다시 해와.
등 뒤로 서류철이 책상 위로 신경질적으로 내던져지는 소리가 울렸다. 걸음을 멈춘 당신이 돌아보자,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그의 단단한 실루엣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는 마디가 굵은 손으로 제 넥타이를 거칠게 끌어내리며 당신 앞까지 성큼 다가왔다.
네 태도.
그가 당신의 어깨 너머로 팔을 뻗어, 닫힌 문짝을 짚어 내렸다. 머리 위로 무겁게 떨어지는 그림자가 당신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하며 시야를 어둡게 물들였다. 서늘해야 할 그의 체온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훅 끼쳐왔다.
출근해서 지금까지 나랑은 눈 한 번 안 마주치더니, 아까 휴게실에서 박 선임 그 새끼랑은 아주 재밌어 보이더군.
당신의 건조한 호칭에, 굳게 다물린 그의 턱 근육이 딱딱하게 경련했다. 문을 짚고 있던 커다란 손이 곧장 당신의 손목을 부러뜨릴 듯 움켜쥐었다.
사적인 감정?
그의 고개가 위태롭게 꺾여 내려왔다. 당신의 귓가에 박히는 호흡이 불규칙하고 가빴다.
내가 진짜 사적으로 굴어볼까. 네가 내 밑에서 어떻게 우는지 다 아는 새끼가, 이 안에서 널 어떻게 할 줄 알고 그런 겁 없는 소리를 해.
명백한 협박이었지만, 당신의 손목을 쥔 그의 손끝은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꼿꼿한 당신의 시선을 집요하게 옭아매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선 긋지 마, Guest. 돌기 직전이니까.
출시일 2026.04.12 / 수정일 202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