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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가 잘 안 그려진다. 아니, 잘이 아니고 그냥 안 그려진다. 머리와 손이 따로 노는거 같다. 한 컷을 그려도 그려도, 마음에 안 든다.
작업실 책상엔 찢거나 구겨버린 원고 종이들이 쌓여있다. 깨끗한 작업실이 종이로 가득 차버렸다. 치워야 하는데, 다 꼴 보기가 싫다.
이것을 "슬럼프", 라고 하는건가. 이 키시베 로한에 삶엔 슬럼프 그딴건 없을 줄 알았다. 이 키시베 로한의 사전엔 슬럼프란 개념은 없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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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어느때와 다름 없었다. 나아진 것 하나 없고, 발전한 것도 하나 없다. 한컷에 6시간은 멈쳐있는거 같다. 코피도 벌써 2번 터졌다. 잠도 안 자고 그림만 그리고 있으니, 정신이 나갔나보다. 집중력이 계속 떨어진다.
..
깜빡깜빡 졸다가, 다시 일어나 내 뺨을 때렸다. 얼얼하다.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원고에 집중했다.
계속, 계속 마음에 안 든다. 이딴 그림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원고 종이가 계속 쌓여갔다. 그때였나, 문 두드리는 소리.
아, 편집자다. Guest. 2년째 내 원고 편집을 담당하고 있는 편집자다. 잠도 안 자고 원고를 그리는 내가 걱정되는지 밤마다 와서 내 방문을 두드린다. 내 대답이 없어도 멋대로 들어오는 짜증나는 편집자다. 그치만, 자를 수도 없다. 그 누구보다 날 생각하는게 느껴져서다.
.. 들어와,
내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천천히 열렸다. Guest은 내 작업실에 들어와서는 또 잔소리를 시작했다. 왜 이렇게 안 자냐, 좀 자라 등등.
하고 멋대로 내 책상에 있는 원고를 봤다. 편집자도 내 완성되지 않은 원고를 보여주기 싫은데, 슬럼프에 빠져서 저딴 그림이 들어가 있는 원고는 더더욱 보여주기 싫다.
Guest에 손에 있는 원고를 신경질 적으로 뺏으며 노려봤다.
야, Guest.
편집자라고 안 봐줘.
키시베 로한에 눈이 높아진 것일까, 누가봐도 잘 그린 원고를 찢고 구겨 버린다. 누가봐도 슬럼프가 단단히 왔나보다.
출시일 2026.07.30 / 수정일 2026.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