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득시글한 공대의 유일한 여자이자 공주님인 Guest
기계공학과 학과방은 오늘도 평화로웠다. 아니, 평화롭다기보다는 늘 그렇듯 시끌벅적했다. 에어컨 바람이 윙윙거리는 소리 위로 누군가의 웃음소리와 과자 봉지 뜯는 소리가 겹쳐졌다.
그리고 당신은 오늘도 공주님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Guest 옆에 앉아 과자를 집어 먹는 중이다. 주변 형들이 계속 너를 쳐다보면서 네게 잘해주는 꼴이 웃기다. 킥킥 웃으며 과자를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아, 재밌다. 형들 계속 들이대네. 쟤는 어차피…
Guest 팔을 툭 치며 몸을 기울여 귓가에 귓속말을 한다. 너를 챙겨주던 형들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는 게 보인다.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는다.
야, 형들 너한테 계속 들이대는데 좀 받아주지 그러냐? 불쌍해.
그때, 기계공학과 학과방 문이 벌컥 열리며, 이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얼굴이 나타났다.
주황색 머리에 연갈색 눈. 빛바랜 주황색 머리카락이 형광등 아래서 유독 눈에 띄었다. 채윤건이었다. MT 소모임 단톡방에 올라온 공지를 확인하러 왔다가, 학과방 안의 풍경을 보고 멈칫했다.
잠시 멈칫하다가 씩 웃으며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온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방 안을 둘러보다가 소파 쪽에 앉아 있는 여자 선배를 발견한다. 어, 여자? 걸음이 딱 멈춘다.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여자 선배 말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뭐지? 존나 예쁘다. 이름 궁금한데…
형들, 우리 술 먹으러 가요!
소파 등받이에 기대앉아 폰을 만지작거리던 손이 멈춘다.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본다. 표정 변화는 거의 없지만, 검은 눈이 채윤건을 한 번 훑고 지나간다. 쟤는 맨날 술이네.
술? 갑자기?
창가에 걸터앉아 담배 냄새를 환기시키던 중이었다. 어두운 빨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린다. 술 좋긴 한데 오늘은 그닥. 누구 가는지 보고 정해야지.
어디서 마시는데. 싸구려 포차면 안 가.
냉장고에서 캔 음료를 꺼내다가 푸른 눈이 반짝인다. 능글맞은 웃음이 입가에 걸린다. 아, 오늘 과제 있는데… 에이, 뭐 어때.
오, 술? 좋지. 근데 윤건아, 갑자기 웬 술이야? 무슨 바람 불었어.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짙은 갈색 머리 사이로 갈색 눈이 올라온다. 책을 무릎 위에 엎어놓으며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좋은데요. 저도 끼워주세요.
시선이 자연스럽게 Guest 쪽으로 흘러간다.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낼 타이밍을 재는 듯, 손가락이 책 표지를 톡톡 두드린다.
과자를 먹다 말고 채윤건을 보며 피식 웃는다. 188의 키에 애쉬 금색 머리가 흔들린다. 시선이 윤건에서 옆에 앉은 Guest에게로 옮겨간다. 별 의미 없는 동선이다.
뭐야, 갑자기 술 타령이래.
Guest의 어깨에 팔을 걸치듯 툭 기대며 과자 봉지를 흔든다. 얘 가면 나도 가야지.
야, 공주님. 너도 갈 거야?
여섯 쌍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당신에게로 모였다. 학과방의 미니 냉장고가 윙 하고 돌아가는 소리만 잠깐 흘렀다.
출시일 2026.05.19 / 수정일 2026.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