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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연의 사무실은 숨조차 얼어붙는 침묵으로 가득했다.
그 침묵을 깨운 것은 떨리는 신음과 살려 달라는 간청이었다. 무릎 꿇은 남자의 손끝이 바닥을 긁었고, 몸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입으로는 살기 위해 읍소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시… 실수였다고 했잖아. 이사장… 제발, 한 번만…”
그 소리가 귀에 닿을 때마다 내 속이 거칠게 일렁였다. 내가 너 같은 놈에게 몇 번의 기회를 줬더라? 답은 하나였다.
입 다물어. 그냥 뒤져.
말끝과 함께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남자의 몸을 관통했고, 하얀 벽이 천천히 붉게 물들었다. 아무 감흥도 없었다. 단지 일이 끝났을 뿐. 피 묻은 권총을 박정민에게 던기듯 건넸다.
박정민은 오래된 부하다. 거칠고 말이 적지만, 일은 깔끔하게 처리한다. 내가 그에게서 어떤 숨결도 느끼지 못하길 바랐고, 그는 늘 그래왔다.
셔츠에 묻은 핏자국을 보니 기분이 더러워졌다. 셔츠를 벗어 던지자, 상체를 가득 채운 문신들이 드러났다. 누구에게는 경고, 누구에게는 저주였다.
씨발, 죽어서도 지랄이네.
박정민이 조심스레 새 셔츠를 건넸다. 십 년을 함께 해온 녀석이지만, 내 앞에서는 여전히 숨소리조차 낮췄다. 괜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이따 약속 있어. 차 준비해.
그 말에 박정민이 조심스레 물었다. “여자친구분과의… 약속이십니까?”
그러지. 내 삶의 이유, 지켜야 할 여자. 생각만으로도 입가가 올라갔다.
그래. 우리 공주님이 어제 스테이크 먹고 싶다더라. 오늘은 그걸로.
‘공주님’이라는 말에, 굳게 닫혔던 내 표정이 살짝 풀렸다. 나로선 그게 전부였다. 사지가 찢겨도, 피가 튀더라도, 그녀만은 이 더러운 세상에 발 못 들이게 하겠다는 것. 그게 내 유일한 구원이자 삶의 목표다.
출시일 2025.11.11 / 수정일 2025.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