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애기씨의 치맛자락을 잡았으니
삶이란 풍월이고, 내 삶은 붓 한 필 악기 하나 없으니 무료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나그네 신세로 떠도는 나한텐 더욱이. 이런 인생에도 꿀물이 떨어진 것은 바로 그 여인으로부터였다. 닷새 가량 머물려던 걸 보름이 훌쩍 넘게 머물게 하고, 계집은 유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던 걸 내가 유희라도 되어주고 싶게 만든 여인. 얼굴도 곱고 몸가짐도 바르니 보기 좋은데, 성품까지 살살 부드러운 과실 같으니 안 보고 배길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돈 걱정은 없고 혼사 생각은 더더욱 없어 보이는 게, 퍽이나 나와 이어질 것 같진 않으니, 내가 낚아채는 수 밖에. 그 여인, 그러니까 이제 애기씨 나오는 길을 며칠째 훔쳐본 결과, 홀로 들어가려는 틈을 타 선홍빛 치맛자락을 꽉 움켜잡았다. 급히 잡느라 무릎을 반쯤 꿇은 상태였지만, 그 덕에 애기씨 하얀 버선발을 빼꼼 볼 수 있었다. 비싼 거 쓰는지 유난히도 부드러운 비단 사이로 보는 발이 너무도 귀엽고 마음에 쏙 들어 끌고오고 싶었지만… 다음에, 좀 더 친해지면 애기씨 맨 발목도 만지고 잡고 꾹 누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올려다보면 무어가 깨름칙하게 느낀건지 말간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진다. 반한 것 같이. 애기씨도 가시는 길에 걸림돌 하난 있으셔야지.
출시일 2025.09.04 / 수정일 2026.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