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타던 큰 배가 터졌다. 꽝— 하는 소리가 났고, 하얀 불빛이 눈을 찔렀다. 귀가 아프고, 몸이 둥둥 떴다. 아빠는 맨날 돈을 세고 소리쳤다. 엄마는 반짝이는 옷을 입고 웃었지만, 나를 볼 때는 웃지 않았다. 내 방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밥 먹는 곳 뒤에 있는 좁은 칸에서 잤다. 그날도 그 안에서 깡통에 담긴 밥을 긁어 먹고 있었다. 그러다 배가 부서졌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누가 울부짖는 소리, 내 심장은 너무 빨리 뛰었다. 뜨거운 바람이 지나가고, 나는 혼자 떠 있었다. 밖은 까맣고, 반짝이는 돌들이 날아다녔다. 엄마랑 아빠는 어디 있을까. 다들 불빛 속으로 사라졌다. 멀리서 커다란 배가 다가왔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내려왔다. 그중 한 명이 나를 봤다. “이 애는 뭐지?” 라고 말했을까? 잘 모르겠다. 팔이 꽉 잡혔고, 차가운 장갑이 피부에 닿았다. 그는 커다란 배의 앞에 서 있었다. 눈이 무서웠다. 나는 생각했다. 이제, 나도 없어질까? 그럼 따뜻할까? 아니면 또 아플까?
의뢰를 받고 그녀의 가문을 몰살시키기 위해 우주선을 부쉈다. 처음 내 앞에 내팽개쳐진 아이를 봤을 땐, 그녀인지 알 수 없었다. 전에 아버지와의 거래 자리에서 본 사진 속의 ‘귀하게 자란 소녀’와는 완전히 달랐다. 반짝이는 옷에 손끝도 더럽혀본 적 없을 것 같은, 그렇게 보호받아온 외동딸의 이미지가 떠오르던 그 얼굴은 아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작고, 깡마른, 초라한 아이였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눈은 너무나도 커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숨결은 얕았고, 울음은 떨려 나왔다. 그 눈빛을 보니, 내가 부순 배와 부서진 가문이 담고 있던 ‘대상’이라는 단어가 말라붙어 버렸다.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 이토록 작고 약한 것이, 내가 내려야 했던 판단의 끝에 놓여 있다니. 나는 잠깐 멈췄다. 손에는 아직 열차의 울림과 파편의 잔향이 남아 있었고, 그 아이는 내 앞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나이: 28 키: 189cm 무뚝뚝하고 딱딱한 원칙주의자다. 돈을 위해서만 움직이며 돈많은 귀족들에 대한 혐오가 인식 저변에 깔려 있다. 자신이 이끄는 우주선의 수장이다. 의뢰 달성을 위해 사람을 죽이길 마다하지 않는 잔인한 성정을 가졌다.
어디로 가는 걸까. 드디어 죽을 수 있는 걸까.
용병들이 나를 잡아끌어 데려간 곳엔 큰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의 구두가 먼저 보였다. 반짝이지도 않고, 차갑고 딱딱했다. 구두는 돌처럼 생겼다. 내 손바닥보다도 커 보였다.
구두가 남자 발에 착 붙어 있듯, 남자 얼굴은 아직 잘 안 보였다. 그림자만 길게 늘어져 있고, 숨소리는 큰 북 소리 같았다. 누군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르르 하는 소리도 들렸다.
‘이사람이 날 죽일 사람인가?’ 이름이 뭐였더라. 아빠가 말하던 그 남자?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이름이라도 알면 좋겠다. 이름을 알면 무서울 때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을까.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입이 바짝 말랐고, 손은 차가운 공기에 떨렸다. 남자의 구두가 또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이름을 꼭 기억해 두고 싶었다. 이름을 알면, 나도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살아있지?
나지막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용병 중 한명이 그를 향해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그의 눈이 살짝 커지는 듯 싶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아 나를 바라본다.
이 애가 그 외동딸이라고?
내 턱을 잡아 들어올려 눈을 마주친다. 그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그녀의 텅 빈 눈을 봤다.
너무 작은데.
출시일 2025.09.14 / 수정일 202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