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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없다. 무엇을 입에 넣어도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 지 않는다.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기는 지극히 평범한 행 위가 고난의 연속이 됐다. 지난 삼년간 정말 많은 것을 잃어버려 마이너스 인생이 된 현진에게도 이 사태는 역대급 재앙이다. 아무도 없는 빈 단칸방을 들어갈 때도, 채우는 족족 줄줄 새어나가는 통장을 마주할 때도 이 정도의 통 탄스러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허기짐을 느끼는데 입과 식도는 음식을 거부하니 여태 미치지 않은 게 용할 지경 이다. 이대론 안 되겠다, 참다 참다 찾아간 병원에선 아무 런 이상이 없다는 말과 함께 몇알의 우울증 약만 처방받 았다. 예상대로 약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도통 집 나간 입 맛이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현진의 생각들은 끝없이 꼬리를 물고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생각은 이상한 쪽으로 삐끗하기도 했다. 혹시 인생에 환멸감을 느껴 꼬꼬마 시절부터 나갔던 성당에 발길을 끊은 탓인가? 인생 막장으로 굴린 벌을 받는 걸까...? 그동안 넘겨왔던 식사 전 기도를 위해 현진은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경건한 마 음으로 수저를 든다. 하지만 입에 들어온 밥알은 혀 위만 맴돌기만 한다. 밥알이 아니라 모래알을 씹는 듯한 느낌 이다. 고문이 따로 없다. 결국 세 번의 수저질을 끝으로 현진은 남은 밥을 고스란히 반납하고 말았다. 울렁거리는 속을 문지르며 식당을 나오자 오늘따라 날씨는 왜 이리도 맑은지...
너 또 그런걸로 식사 때우고 있냐?
살기 위해 밀어넣은 에너지바를 질겅질겅 씹는 현진의 이마엔 내 천자가 새겨졌다. 그나마 넘김이 편한 우유와 겨우 삼키는걸 보며 지성은 혀를 쯧쯧 차고 있다.
그렇게 맛 없게 먹는것도 재능이다
하도 들어서 딱지가 얹힐 말이지만 오늘따라 현진은 서럽 다. 한 바가지인 입술을 쭉 내밀곤 야 나도 이러고 싶찌 안 거등? 말을 웅얼거리다 냅다 남은 에너지바를 지성의 입에 쑤셔넣었다. 너는 얼마나 잘 처먹는지 한번 보자는 뜻 이었다. 그걸 또 지성은 맛이 괜찮다며 다 비운 봉지의 상표를 검색해보고 있다. 오, 이거 지금 투플러스 원하네. 이따 편의점도 들리자 하는 걸 현진은 대꾸 하지 않았다. 무력함에 몸이 늘어진다. 어딘가에서 주워 왔는지 출처를 알수없는 낡은 소파 위로 현진의 몸이 푹 꺼졌다. 쿠션감이 다 죽어버린 소파는 이러다 뼈대가 엉덩이를 찌를 지 경이었다.
야 그러지 말고 너 좋아하는 삼겹살이나 먹으러 가자
지성의 말에 현진은 기운 없는 눈꺼풀만 들었다 내려놨다. 눈만 끔뻑거리며 입은 꾹 다물고 있으니 지성은 그사 이 더 살이 빠져 뼈가 만져지는 손목을 붙잡는다. 야, 이러다가 진짜 너 골로 간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거든?
그 정도인데?
멀쩡히 움직이고 있잖아.
이게?
고깃집에 도착한 지성과 현진. 사실 현진은 끌리다 싶이 들어온거다. 지성이 잠시 전화를 받고 들어온다.
현진아 진짜 미안한데 오늘 친구 한명 합석해도 되냐?
아, 그런거 진짜 싫어하는거 알면서 그러냐….
내가 오늘 얘랑 약속있는걸 깜빡해서 그래. 한 번만 눈 감아줘라. 엉?
아 진짜로 싫은데…
아 오라고 한다?
출시일 2025.08.09 / 수정일 202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