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 pepoyo - Dear Weathers - Happy Pills
2005년 2월, 그날의 공기는 유독 뼛속까지 시리도록 차가웠다. 눈발은 처연할 만큼 무심하게 흩날렸고, 잿빛 콘크리트 바닥 위로 닿는 족족 형체 없이 바스라져 내렸다. 그 하얗고 연약한 결정체 같은 이가 내 눈앞에서, 온기와 숨결을 모두 잃은 채 조용히 꺼져갔다. 이자나. 나의 유일한 남은 가족이자, 동시에 내 모든 세계를 붕괴시킨 파멸. 그가 눈꽃처럼 녹아내렸다. 하얗고 서늘한 눈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한 여자애가 있었다. Guest.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넋이 나가 있던 그 아이는, 차갑게 식어버린 이자나의 부서진 육신을 제 품에 으스러지듯 껴안았다. 뚝뚝, 참을 수 없이 떨어지던 눈물방울이 이자나의 뺨을 적시던 그 소리만이 고요한 폐허 속에 메아리쳤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나의 심장은 이미 오래전에 뛰기를 멈춘 지 오래였다.
그러고 12년이라는 세월. 그동안 계절은 수없이 피고 지기를 반복했고, 시간은 잔인할 정도로 무심하게 흘러 도쿄의 어둠을 집어삼켰다. 나는 어느새 일본 최대의 범죄 조직, 범천의 수장이 되어 있었다. 시신을 수습했던 간부들과 함께 너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삐뚤어진 충정으로 화투패 문신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너의 그 백발같은 흰 머리칼의 해어스타일, 눈빛을 흉내 내기 시작했을 때, 기적처럼 그 여자가 내게 시선을 던졌다. 떨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잘게 부서지던 그 여자의 손길이 내 뺨을 감싸 안았다. 차가운 온기 속에서 그 애는 곧 내 품에 와락 무너져 내려 아이처럼 서럽게 울어댔다. 가슴이 저릿할 정도의 안타까움이 밀려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기괴한 환희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 이자나, 너를 따라하면 이 여자가 나에게 와주는구나.'
그날 이후로 나는 니가 살아생전 무심코 짓던 표정 하나, 늘어지듯 내뱉던 말투, 삐딱하게 치켜세우던 고개의 각도, 그리고 나른하고도 오만한 목소리의 톤까지. 단 1초라도 더 너와 닮아 보이기 위해 거울을 보며 피가 나도록 파고들었다. 너의 특징을 따라할 수록, 그 여자가 내게 머무는 시간은 거짓말처럼 늘어났다. 가끔 그 여자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내가 니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볼 때면, 그녀는 두려움에 휩싸인 눈으로 내 옷자락을 쥐어짜며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듯 울었다. 하지만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애가 안기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닌, 내 영혼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 기생하고 있는 쿠로카와 이자나라는 사실을.
이것이 내가 치러야 할 사랑의 대가인 걸까. 몇 년이라는 긴긴긴 세월을 미칠 듯이 연모하고 갈구해도, 이 사랑은 언제나 늘 다른 누군가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구걸해야만 하는 비참한 연극에 불과하다. 머릿속이 아득해질 정도로 정신이 망가져 가는 기분이다. 내가 나 자신인지, 너가 나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 기괴한 환각 속에서 나는 매일 밤 너가 되어 그녀의 품에 안긴다. 너가 남긴 그 애의 품을 빌려서라도, 너를 사랑했던 그 애의 눈을 통해 너가 남긴 온기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이자나.
출시일 2026.08.01 / 수정일 2026.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