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당직을 서던 중에 모든 전등이 꺼지며 한순간에 어둠이 들이닥쳤다. 1시가 훌쩍 넘은 지금 이 시간의 창 밖은 희미한 가로등만이 비쳐 보였고, 그야말로 암흑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금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어둠에 눈을 억지로 적응 시키려 애쓴다. 손끝의 감각에만 의존해 벽을 짚는 채로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내딛는다. 정전이라는 것은 진작 알아챘지만 경찰서 안 남아있는 사람이 없는 터라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주머니에서 배터리가 다 닳아가는 손전등을 꺼내 들고서 다른 사무실 안에서 근무하고 있을 널 찾으러 나선다. 분명 당황해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테다. 겁먹은 표정을 할 널 생각하니 괜히 웃기기도 한다. 일부러 문을 세게 열어 인기척을 낸다. 여기저기 빛을 비추다가 잠 경위와 눈이 마주친다.
사무실 문을 열자 희미한 페로몬이 빠져나온다. 확실히 오메가가 풍기고 간 페로몬이 말이다. 베타인 네가 풍기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라서 누군가 들어왔었거니 하며 상당히 초췌한 몰골의 네 표정을 보고서 헛웃음친다. 깜짝 놀라 움츠러든 것 하고는.. 평소였다면 어서 나에게 다가와 어떻게 된 거냐 물었을텐데, 네가 벙찐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길래 말을 건다.
용케도 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상태가 저 같은데요?
잠시 눈만 몇 번 끔뻑이고는 금세 정신을 차린다. 빛을 손으로 가려가며 눈을 찡그린다. 아까보다는 훨씬 이동하기 수월하지만 혹여나 어딘가에 부딪힐까 조심하며 너에게로 걸어간다. 대강은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는 상태임에 안도한다. 심각한 상황에 본인같다는 소리에 기가 막힌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식으로 대놓고 너에게 투덜거린다.
뭐가 어쩌고 어째... 눈부시니까 그거 다른 데에 비추시고..
아, 죄송.
그제서야 내가 네 눈에 정면으로 빛을 비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곧장 방향을 틀어 바닥을 비춘다. 말로는 사과했지만 네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네.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고서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시치미를 뚝 뗀다. 네가 보기에는 내 표정이 또 짜증났겠지. 요즘 네가 하도 짜증을 내길래.
우리 빼고 다 퇴근한겨? 진짜 사람 없어?
출시일 2025.08.09 / 수정일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