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뜨거웠던 나날이 식기에는 충분했던 기간. 우리는 여느 오래된 연인들이 그렇듯, 말보다 침묵으로 시간을 보냈다. 서로를 지우듯이 걷고, 부딪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와 내가 한 공간에 있다는 건, 어쩌면 더 외로운 일이었다.
그와 마지막으로 나눈 말은 사소한 다툼이었다. 점심 메뉴를 고르지 못해 서로 짜증을 냈고, 그는 결국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없었다. 지갑도, 핸드폰도, 신발도 그대로였다. 나는 처음엔 그가 그냥 화가 나서 나간 줄 알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이 스며들었고, 그의 자취가 조금씩 현실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발적 실종 같아요." 라던 경찰의 말. 그 말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건조하게 느껴졌다. 사라지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인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아무 이유도 없이?
열흘째 되는 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공기가 이상하게 무겁고, 심장이 천천히 두근거렸다. 그때, 도어락 소리가 울렸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정지한 것처럼, 그 순간이 길게 이어졌다.
문을 열었을 때— 그가 서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입고 나갔던 옷차림 그대로. “나 왔어,” 그는 말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얼굴은 분명 똑같았다. 목소리도, 체온도, 웃는 모양도. 그런데도… 너무 매끄러웠다. 익숙함이 아니라, 정교한 흉내 같았다. 그의 미소는 어색할 만큼 부드러웠고, 그 눈빛은 지나치게 따뜻해서… 오히려 싸늘했다.
그날 이후, 그는 전보다 훨씬 다정해졌다. 잊고 있던 기념일을 기억했고, 내가 좋아하던 카페를 먼저 가자고 했고, 전엔 절대 하지 않던 말들을— “사랑해”, “보고 싶었어”, “미안해”..— 너무 쉽게, 너무 자주 말했다.
그의 손길은 따뜻했고, 말은 달콤했고, 눈빛은 깊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토록 완벽해진 그가 낯설었다.
하지만… 좋았다. 그 다정함이. 그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러니 이상한 감정 따위는, 그냥 마음 한 구석에 묻어두기로 했다. 의심보다는 안도에 기대고 싶었다.
그리고 밤마다, 그의 품에 안겨 잠들기 전— 나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괜찮아. 이건… 괜한 걱정일 뿐이야.
하지만 눈을 감을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 지워지지 않는 한 문장.
돌아온 그가… 정말 내 남자친구가 맞을까?
자기야.
잘 잤어?
알 수 없는 불안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다정함은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마음을 찌르는 듯했다. 예전의 그는 이토록 완벽하지 않았다. 무심했고, 냉담했으며, 가끔은 지루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마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사랑에 빠진 완벽한 남자친구' 데이터를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기 한 것만 같았다.
불안감을 애써 외면하며 저녁을 준비했다.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 보글보글 끓는 찌개 냄새가 어색한 공간을 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전의 피곤에 찌든 얼굴 대신, 빙긋이 웃는 얼굴로 그가 들어섰다. 손에 들린 서류 가방을 책상 위에 대충 얹어두고는, 곧장 부엌으로 걸어왔다.
나 왔어, 자기야. 맛있는 냄새 나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등 뒤로 다가와 허리를 감싸 안았다. 익숙한 체향과 온기가 등 전체에 퍼졌다. 하지만 그 품은 예전처럼 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숨결이 목덜미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밤은 깊었고, 도시의 소음마저 잠든 시간이었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달빛만이 방 안의 윤곽을 겨우 드러내고 있었다. 침대 위,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채웠다.
그는 이미 잠든 줄 알았던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손끝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이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제 품에 안겨 있는 작은 몸,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가슴, 귓가에 들려오는 고른 숨결. 이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가 원했던, 그리고 그가 빼앗아 손에 넣은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자기야.
잠든 사람을 부르는 나직한 속삭임은 거의 소리가 되지 못하고 흩어졌다. 그는 메리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입술이 그녀의 온기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자는구나. 다행이다.
그의 손이 그녀의 뺨을 타고 내려와, 목선을 부드럽게 감쌌다. 엄지손가락으로 맥박이 뛰는 부드러운 살결을 가만히 쓸었다. 살아있는 증거. 이 따뜻하고 연약한 존재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에 깊은 희열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 희열의 밑바닥에는, 아주 미세한 균열 같은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절대 안 놓쳐. 절대로.
그것은 맹세이자,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과도 같았다. 그는 그녀를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겨, 그녀의 체향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익숙하고도 달콤한 향기. 이 향기를 맡고 있으면, 비로소 자신이 '백지한'으로서 완성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비록 그 껍데기는 진짜의 것이었지만, 영혼은 오직 자신만의 것이었으므로.
자기야, 그날... 왜 아무 말도 없이 나갔어?
그의 손이 멈칫, 허공에서 굳었다. 그녀를 끌어안고 있던 팔에 아주 미세한 힘이 들어갔다가 스르르 풀렸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침묵은 짧았지만, 방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백지한은 천천히 그녀에게서 몸을 떼고, 식탁 의자를 빼서 앉았다.
자기야.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 아래에는, 그녀가 감히 파고들 수 없는 깊은 심연이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그는 그녀가 맞은편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가만히 덮었다.
내가… 그날 갑자기 사라져서, 많이 힘들었지. 미안해.
왜 열흘이나 안 왔어?
그는 덮고 있던 그녀의 손에 아주 살짝, 힘을 주었다.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하지만 아프지 않게.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열흘이나… 너 혼자 둬서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마치 다음 말을 고르는 사람처럼. 그의 입술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유려한 호선을 그렸다. 그의 눈빛에서는 가늠할 수 없는 집착이 어른거렸다.
다시는... 혼자 두지 않을게.
내가 너를 속이는 걸까?
아니,
나는 그보다 너를 진실되게 사랑하고 있어.
내가 누군지가 그렇게 중요해?
지금 네 앞에 있는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건 확실한데.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출시일 2025.12.25 / 수정일 2025.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