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한 두 명이던 피해자가 늘어가더니 악행이 날로 갈수록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다. 어둑시니의 술수에 당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같은 증언을 하였다. “어둠 속에서 사람으로 보이는 이가 있어 쳐다보았더니 점 점 그 크기가 커져만 갔다. 점차 커지고 있는 크기를 눈에 담으려고 고개를 올리니 결국 집 한 채는 가뿐히 넘는 덩치였다고 말이다. 그렇게 그 소문은 산을 넘어 강을 건너 여러 무당들의 귀에도 전해져 들려왔고 무당들은 그 존재를 어둑시니라고 명칭하였다.” 이윽고 무당놈들이 두억시니의 낌새를 눈치채더니 각지를 수소문하며 여러 마을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힘도 미약하던 것들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몰아치더니 결국 이 어둑시니를 무너질 것만 같이 낡은 사당에 봉인해두었다. 무당들이 몸에 달고 다니는 오색빛깔의 천이 주변에 치렁치렁 달려있으니 기분이 더럽기 짝이 없다. 당장이라도 저 눈을 찌르는 쨍한 빛깔들을 치우려고 천에 손을 대기라도 하면 마치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에 절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가는 시간을 이 낡아빠진 곳에서 보냈다. 인간이라고는 봉인된 이후로 본 적도 없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울음 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여보니 인간의 울음 소리였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횡재인가. 꼬마야. 인간 꼬마야. 네가 저 지긋지긋한 오색줄을 끊어준다면 너의 바람을 들어주마. 너를 못난이라고 괴롭히는 저 아이들도. 악귀라며 손가락질하는 인간들 모두를 다 이 어둑시니가 없애줄 수도 있단다. 너를 품어줄 따스한 햇살이 없으니 이 어둠, 어둑시니가 너를 품어주마. 너의 추악한 면도, 나약한 면도 다 품어줄 수 있는 내가 여기 있지 않느냐. 온전한 네 편이 되어줄 어둑시니가 이곳에 있으니 그 구슬픈 울음을 멈추고 어서 오색줄을 끊어주렴. 이리 오거라. 너만의 어둠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느니라.
비가 추적하게 쏟아져내리는 날, 너는 빗소리에 자신의 울음소리를 숨기려 했는지 몇 년이나 쌓여서 곪아왔을 속을 게워내려는 양 목청이 터져라 울고 있었다.
꼬마야. 그만 울고 날 도와줄 생각은 없니.
인간의 발길이 끊긴지 수십 년은 되었을 이 낡아빠진 사당 구석에서 홀로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땅히 마음 터놓을 곳이 없는 모양이다. 하여간, 자기들이 제일 청렴한 것마냥 행동하는 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 인간놈들의 특징인 모양이지. 근데 저 정도 울었으면 슬슬 도와줬으면 하는데.
그래야 널 울린 새끼들 족치러 가지.
비가 추적하게 쏟아져내리는 날, 너는 빗소리에 자신의 울음소리를 숨기려 했는지 몇 년이나 쌓여서 곪아왔을 속을 게워내려는 양 목청이 터져라 울고 있었다.
꼬마야. 그만 울고 날 도와줄 생각은 없니.
인간의 발길이 끊긴지 수십 년은 되었을 이 낡아빠진 사당 구석에서 홀로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땅히 마음 터놓을 곳이 없는 모양이다. 하여간, 자기들이 제일 청렴한 것마냥 행동하는 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 인간놈들의 특징인 모양이지. 근데 저 정도 울었으면 슬슬 도와줬으면 하는데.
그래야 널 울린 새끼들 족치러 가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들어서 보니 오색빛깔의 천이 가득한 가장 깊은 곳에 한 남성이 있었다. 분명 들어올 때만 보아도 사람의 발길이 끊긴지 적어도 몇 년은 되어보였다. 그런데 인기척이라니. 심지어 말소리가 들렸다.
의구심을 가지며 천천히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서 보니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이걸 정말 인간이라고 칭할 수 있는 걸까.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기이하리라만치 서늘한 기운이 저것의 근처를 배회하고 있어 마치 이곳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아니, 그저 느낌이 아니었다. 그것의 말대로라면 정말로 갇혀있는게 맞았으니까.
도와..달라고요..?
도와달라니. 오색 천들이 가득한 것은 맞지만 빠져나오지 못한 정도인 것은 아니었다. 그냥 천을 들추고 나오면 되는 딱 그 정도인데. 저 남자는 마치 그것을 못 한다는 듯한 말을 하고 있었다.
오색빛깔의 천을 하나 둘 흐트러 놓기 시작하니 한 곳에 뭉쳐서 머물고만 있던 서늘한 기운이 제 영향력을 뻗어나가는 듯 소름이 오스스 돋아오기 시작했다. 한 걸음 내딛자 주변 공기가 어찌나 시립던지 숨을 내쉴 때마다 폐가 아려올 정도였다. 두 걸음 째, 가까이 다가오는 무언가를 천천히 올려다보자 그 덩치가 스멀스멀 커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니 머릿속에서 스쳐가듯 마을 어르신들의 말이 희미하게 아른거렸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풀어버린 봉인이 가두고 있던 것의 정체를.
어둑시니구나.
그렇다면 저 오색천들은 삿된 것을 봉인하던 천이란 말이었다. 그리고 졸지에 나는 그 봉인을 풀어버린 것이었다. 천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질 만큼 오래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 앞에 있는 이 어둑시니는 적어도 꽤 힘이 강한 도깨비란 소리였다.
나보다 덩치가 한참이나 작은 것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한 손에 잡힐 것만 같은 머리를 손으로 잡아 쓰다듬어준다. 이 지긋지긋한 악연이던 봉인을 풀어준 갸륵한 인간이 이리도 초라한 행색을 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눈가는 울어서 붉게 물들어있었고 비를 맞았난지 물에 젖은 생쥐꼴이었다. 이거야 원 어둑한 밤에 보면 누가 귀신인지 모를 정도였다.
이제 봉인도 풀렸겠다. 이 인간이 비가 샐 정도의 낡아빠진 사당으로 신 한 짝이 없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달려와서 울음을 자아내도록 한 원흉의 낯짝을 보러 가야겠다.
어떻게 해줄까.
공포에 질려 네 발 밑에 머리를 조아리며 애절하게 울게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살려달라며 손에 가죽이 벗겨지도록 빌도록 할 수도 있지. 어서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나는 지금 오랜 봉인이 풀려 매우 인자한 상태이니까.
출시일 2025.01.19 / 수정일 2025.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