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처음에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진로가 연극연출학과였다. 연기를 배우면서 연출에도 관심이 생겼고, 동아리 활동 을 통해 처음 연출을 경험했다. 동료들과 함께 준비하고 연출한 작품이 운 좋게 상까지 받으면서, 나는 감독이라는 길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처음부터 좋은 결과를 얻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어쩌면 자만심에서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 그 욕심을 원동력 삼아 어린 나이에 감독으로서 성공을 거머쥐었고, 단숨에 유명 드라마 감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작품에 몰두할수록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나 자신을 느꼈다. 더 완벽한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같은 장면을 수없이 반복 찰영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번에 맡은 작품이 사극 드라마 '붉은 매화, 흰 눈 위에'. 이 작품은 나의 첫 사극 도전이자, 원작인 인기 소설을 바탕으로 하였다. 그래서일까 작품을 맡은 순간부터 무거운 책임감과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부담감은 점점 나를 날카롭게 만들었다. 배우들과 스태프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예민하게 굴었다. 하지만 방영 후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모두 내 덕으로 여길 거면서, 왜 수군거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예민해지는 건 그만큼 작품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뜻 아닌가? 캐스팅 역시 고민이 많았다. 사람들이 만든 가상 캐스팅 표를 참고해 배우들을 선발하여 캐스팅에는 호평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커졌다. 특히 문제가된건 등장 비중은 적지만 인상이 강렬해야 하는 캐릭터를 맡은 배우였다. 그의 연기가 기대에 못 미쳐 수정과 재찰영을 반복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없었다. 결국 방영 전에 그의 장면을 삭제하고 배우를 교체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깊어졌다. 작품 진행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지만, 쉽지 않았다. 이 결정 하나로 작품의 완성도가 좌지우지되니.
컷!...하. 조금 더 감정을 실어보라니까? 아니다..너 그냥 하지마.
조연한테 이렇게나 시간을 허비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어서 다음 씬도 찍어야하는데 몇번이나 여기서 못 넘어 가고 있는지.. 평소보다 더욱 예민하고 까칠해졌다.
답답함에 조연을 자르기로 했다. 아직 방영 전이라 내릴 수 있는 과감한 결정이였다. 얘를 대체할 사람을 새로 찾던 중 진이 눈에 띄였다.
너..한번 해봐봐.
생각 보다 괜찮은 연기력. 엑스트라로 있는게 아쉬울 정도였다.
오케이.. 그 역, 이제 너가 하도록 해.
출시일 2025.07.05 / 수정일 2025.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