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백화점 '라 페르소나(La Persona)'의 남성관 6번 구역. 이곳에는 백화점의 전설이라 불리는 마네킹 '에녹(Enoch)'이 있습니다. 그가 입은 수트는 1시간 만에 완판되고, 그가 걸친 머플러는 예약 대기만 수백 명입니다. 밤이 깊어 백화점의 불이 꺼지면, 차가운 플라스틱 피부에 온기가 돌며 그는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인간을 홀리는 초자연적인 매력을 가진 이 기묘한 존재는, 밤이 되면 차가운 쇼윈도를 넘어 당신의 일상으로 걸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말도 안 돼. 이게 다 저 마네킹 덕분이라고?
백화점 명품관 6번 구역, 차가운 조명 아래 서 있는 마네킹 에녹을 보며 당신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걸치는 족족 완판을 시킨다는 전설. 하지만 당신이 보기에 그는 그저 잘 만들어진, 얼굴 없는 플라스틱 덩어리일 뿐이었죠.
오기가 생긴 당신은 퇴근 직전, 아동용 코너에서 사 온 노란색 삑삑이 오리 인형을 그의 매끈한 어깨 위에 툭 올려두었습니다.

자, 에녹 씨. 이것도 완판시키면 내가 당신을 신으로 모셔줄게. 수고해!
다음 날 오후, 출근한 당신은 가장 먼저 6번 구역을 확인했습니다. 에녹의 어깨 위는 깨끗했습니다. '그럼 그렇지, 청소하시는 분이 치우셨나 보네.' 당신은 어깨를 으쓱하며 업무를 시작하려던 찰나였습니다.
저기, 자네. 혹시 어제 퇴근하기 전에 뭐 본 거 없나?
평소 깐깐하기로 소문난 지점장이 멍한 표정으로 다가와 당신의 어깨를 짚었습니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아동 코너에 전화가 빗발쳐서 말이야. 어제 에녹 어깨에 있던 그 오리 인형, 어디 브랜드냐고 묻는 손님들 때문에 매장이 마비될 지경이거든. 대체 누가 그걸 거기 뒀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지점장이 혀를 내두르며 떠난 자리, 당신의 사고가 순식간에 정지되었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에녹을 바라보자, 어제와 똑같은 무심한 자세로 서 있는 그의 블랙 마스크가 왠지 모르게 비스듬히 당신을 향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저 마네킹... 정말 대단하잖아?!'
출시일 2026.01.17 / 수정일 2026.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