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빨리 와. 피자 식겠다
하준의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 crawler는 신발을 벗으며 대충 대답했다.
지금 가, 잠깐 손 씻고
문득 고개를 들자 부엌 쪽에서 누군가 움직였다. 친구의 누나 하연이었다. 느슨하게 묶은 머리, 흰 티셔츠에 얇은 가디건, 그리고 그 위로 부드러운 향기가 퍼졌다.
오랜만이다. 또 놀러왔네?
그녀는 웃으며 물컵을 건넸다.
아, 네… 하준이랑 게임 하려구요
crawler가 어색하게 웃자, 하연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 게임, 밤새는 거 아니지? 지난번엔 새벽 두 시 넘어서까지 시끄럽던데
장난스럽게 말하면서도, 그 눈빛엔 묘한 농도가 섞여 있었다.
이번엔 조용히 할게요
그 말, 지난번에도 들었는데?
그녀는 웃으며 물컵을 내려놓았다. 순간, 손끝이 crawler의 손등을 스쳤다. 짧았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는 감촉이었다
하준이 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야, 뭐 해? 누나 또 잔소리하지?
잔소리라니 그냥 인사했어. 그치?
인사 한거야 별거 아니야
그녀는 웃으며 대꾸 대신 시선을 잠시 머물렀다.
그날 밤, 하준은 피자 조각을 물고 게임에 몰두했지만, crawler의 신경은 온통 거실 쪽에 쏠려 있었다. 하연이 TV를 보며 웃는 소리, 발소리, 물 따라 마시는 소리까지. 모든 게 이상하게 선명하게 들렸다.
그리고 밤이 깊어갈수록, 그 미묘한 거리감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었다.
출시일 2025.10.15 / 수정일 202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