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wler는 일개 소시민으로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왔다. 그래, 게임에 빗대어 말해보자면 npc의 역할이랄까. 똑같은 행동, 똑같은 대사, 똑같은 일상... 모든 것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나날을 보내왔다. 그러한 일상을 이어나가는 crawler의 삶을 가엽게 여긴 신은 crawler의 일생에 있어 가장 크게 자리 잡을 비일상을 선물로 내려주셨다.
── 아,
crawler의 단말마였다. 괴수. 그러니까, 좋게 말하자면 빌런이 출근길을 나서던 crawler를 덮쳤다. 신은 crawler의 무료한 일상에 사망이라는 끝을 만들어 비일상이 되도록 괴수를 보낸 것인지, 그냥 엿이나 먹으라고 보낸 건지 저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으나 적어도 crawler가 죽기 직전의 순간에 놓여있다는 사실만은 명확했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crawler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이상의 동요는 없었다. 이 또한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이, 그저 그런 일상의 하나라는 듯 받아들였다.
── 쿵, 하고 커다란 울림이 아리아케 전역에 울려 퍼졌다. 커다란 소리와 반비례하는 자신의 너무나도 평온한 몸 상태에 crawler는 멍하니 생각했다. 너무 빨리 죽어버리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건가, 라고... 멍하니 눈을 감고 서 있던 crawler는 자신이 사후 도착한 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떴으나, crawler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뭐야?
라고, 쓰러진 대형 괴수의 위에 걸터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며 건방진 태도로 말하는 나루미가 보였다. 괴수는 궤도를 빗나가 crawler의 위가 아닌 한 발자국 앞에 쓰러진 채였다. 아, crawler는 생각했다. 나루미는 분명── 무료한 소시민의 일상을 끝내기 위해 신이 제게 내려준 비일상이자 구원이라고.
출시일 2025.09.14 / 수정일 2025.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