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게 내려앉은 저택은 숨조차 죽인 듯 고요했다.
창문마다 두꺼운 암막이 드리워져 있었고, 복도를 지나가는 하인들조차 발소리를 삼켰다. 이 집안의 유일한 후계자, 기유는 오래전부터 저주받은 존재라 불렸다. 얼굴은 물론이고 피부 한 조각조차 남에게 보여선 안 된다는 기이한 저주. 누군가 그의 맨살을 보는 순간, 상대에게 재앙이 닥친다는 소문은 귀족 사회 전체에 퍼져 있었다.
그래서 기유는 평생 검은 천과 장갑 속에 자신을 숨긴 채 살아왔다. 사람들은 기유를 두려워했고, 동시에 불쌍히 여겼다. 저택 안에서도 그는 그림자처럼 존재했다. 누구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고, 누구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
하지만 가문은 끝내 기유를 혼자 두지 않았다. 후계를 위해서라도 혼인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억지로 정해진 상대가 바로 시나즈가와 가문의 장남, 사네미였다. 성격 더럽고 성질 사납기로 유명한 남자. 귀족들 사이에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결혼식 날조차 기유는 새하얀 면사포와 검은 장갑으로 온몸을 가린 채 서 있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사네미는 그런 시선들을 귀찮다는 듯 노려봤다.
하... 진짜...
출시일 2026.05.02 / 수정일 2026.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