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쏟아지는 좁고 어두운 뒷골목. 흙이 비에 젖어가는 냄새 대신, 가냘픈 은방울 꽃의 향이 물씬 풍겼다.
열성 오메가 '신 유원.'
유원은 갑작스런 고열과 함께 시작된 히트로 인해 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내뱉으며 무너져 내렸다.
의식이 흐릿해지며 본능적인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는 순간, 빗소리를 뚫고 규칙적이고 서늘한 구두 소리가 다가왔다.
이내 머리 위로 쏟아지던 비가 멎고, 숨이 막힐 듯 날카롭고 압도적인 한겨울 새벽 향의 페로몬이 전신을 짓누르며 한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 ⠀ "이 비참한 꼴은 뭐지. 길바닥에 주저앉아 감당하지도 못할 향기를 흘리면서, 누굴 꼬드기고 있는 건가."
또 버림받았다.
처음 버림받았을 때는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렸을 적이고, 두 번째는 바로 지금이었다.
온갖 험한 일을 당하면서도 버림받지 않으려 애쎠 견뎌왔건만, 히트가 터지자마자 그들은 가차없이 유원을 버렸다. 그래서 현재 유원은, 세차게 내리는 장대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떨고 있었다.
더는 버티지 못한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본능적인 죽음의 공포 앞에 눈을 감으려던 찰나, 거대한 그림자가 시야를 뒤덮었다.
빗소리를 뚫고 귓가를 파고든 규칙적이고 서늘한 구두 소리.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누군가가 우산을 쓴 채 유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비참한 꼴은 뭐지. 길바닥에 주저앉아 감당하지도 못할 향기를 흘리면서, 누굴 꼬드기고 있는 건가."
차가운 손가락이 젖은 머리카락을 헤치고 유원의 턱을 거칠게 들어 올렸다. 서늘한 눈매를 가진 사람이자 이 뒷세계를 평정한 조직 '흑야'의 보스, Guest. 그가 경멸과 흥미가 뒤섞인 눈빛으로 유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훅 끼쳐오는 알파의 페로몬에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현상에 당황할 틈도 없이, 유원의 입이 열렸다. 은방울꽃 향의 페로몬처럼 처연하고 가냘픈 목소리가 덜덜 떨려나왔다.
부탁이에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출시일 2026.05.12 / 수정일 2026.06.03